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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17 국내신작전 총평

  • 작성일2017.02.16
  • 조회수4,396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기억하기’는 얼마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떤 사태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게 되는 걸까요. 어떤 사태가 벌어질 당시 당신이 그곳에 없었다면 그 사태는 어떻게 당신의 기억 저장고에 들어와 머물 수 있게 되는 건가요. 능동적인 행위로서의 ‘기억하기’가 가능하려면 우리는 기억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구성된 기억에 대한 신뢰할 만한 근거들을 찾으면서 말입니다. 그 일이란 얼마간 타인들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음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타인의 기억에 빚진 채 우리는 각자의 기억과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갑니다. 그 시간 그 곳에 부재했던 이들이 그 시간 그곳에 존재했던 이들에 대해 말해봅니다. 어떤 투쟁, 어떤 죽음, 어떤 삶도 기억하기로 복원돼야한다고 말해봅니다. 우리들의 잃어버린 시간, 그 벌어진 시간의 틈을 메우려는 무수한 시도들을 지지합니다. 그 끝에 ‘잊지 않겠다’는 이 시대의 다짐은 능동적인 ‘기억하기’로 바꿔 세워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논의의 출발점이 돼준 작품들이 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의 현장에서 기억의 재구성에 대해 묻는 <스물다섯번째 시간>과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로부터 3대에 걸쳐 이어지는 가족사를 통해 역사의 고통을 현 세대가 마주하는 하나의 방식인 <그 날>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을 해고노동자의 가족의 구술로 다시 구성해 본 <안녕 히어로>, 라디오 DJ가 된 SK브로드밴드 케이블 하청 노동자들의 목소리 <플레이온>, 동료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피와 재> 역시 그들의 역사 안에서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 분투입니다.

지금의 젊은 다큐멘터리스트들에게 ‘기억하기’의 출발은 자기 자신이 되곤 합니다. 타인으로 향해 있던 카메라는 어느새 연출자 자신을 비춥니다. 연출자가 직접 카메라 앞으로 나와 자신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생활이란 대체로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난에서부터 빚어진 악순환의 고리들입니다. 일상이 화두이자, 기억하기의 목적어이며, 그것이 곧 영화가 됩니다. <가현이들>이 대표적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거대한 조직과 구조로 편입되는 방식의 저항 운동보다는 일상의 필요가 부른 자발적인 자구책, 생활에 대한 각성으로서의 운동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두리반 투쟁으로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경험한 <어떤 점거>나 홍대 인디밴드가 처한 현실을 담은 <불빛 아래서>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앞선 작품들과 비슷한 듯 보였으나 결국 다른 길로 가버린 작품들에 대해서도 언급해두고 싶습니다. 심사를 하며 연출자가 셀프 카메라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오는 영화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를 찾아가려는 듯 보였으나 결국 그 자신의 기나긴 일기에 다름 아닐 경우가 있었습니다. 자기에 대한 연민과 후회, 반성이 뒤섞인 끝에 자조하거나 용기를 내는 결론이라는 것도 유사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개인적 이유든 사회 구조적 조건 때문이든 자기 세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이들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 봐주길 바라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징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나’라는 세계 너머로 가보려 하나 주저앉고 마는 그 낙담, 내 안에서 맴도는 것으로도 괜찮다는 그 자족에서 생동하는 리듬은 쉬이 찾을 수 없었습니다. 프로그래머들은 자기 세계를 까발려 그 세계 너머로 무람없이 돌을 던져보려는 시도의 작품들에 기꺼이 지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매력적인 인물이나 광경 앞에서 카메라는 종종 균형을 잃고 대상에게 빠져듭니다. 그때 자칫 다큐멘터리가 애초에 던지고자 했던 질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는 수가 생깁니다. <강릉여인숙>,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 <호스트 네이션>은 매혹의 대상 앞에서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가 끝까지 제 질문을 그러쥐고 듬직하게 나아간 작품들입니다. 조금 더 말해보겠습니다. 출품작들 중에는 대통령 탄핵 정국 속 광장의 촛불을 담은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국정 농단’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는 경우는 아니었으나 각자의 고민의 끝에 만나는 현장이 촛불 광장이라는 건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개개인에게 광장의 스펙터클이 중요한 체험적 기억으로 남았다는 의미일 겁니다. 동시에 그 거대한 덩어리로서의 운동성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라 취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사이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고 계속 자기 질문을 해준 작품들에게 환대를 표했습니다.

그렇게 선정된 32편의 작품이 상영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극장에서 영화의 기억들에 기대어 함께 다시 ‘기억하기’를 바라봅니다.

 


 - 인디다큐페스티발2017 국내신작전 프로그래머

정재훈 (영화 감독)

정지혜 (씨네21 기자)

주현숙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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