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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17 Daily 02_ [이슈기획] 사라지고 멀어지다가 드러나는 청춘의 목소리

  • 작성일2017.03.24
  • 조회수3,408



[이슈기획] 사라지고 멀어지다가 드러나는 청춘의 목소리


청춘은 일반적으로는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를 전반적으로 아우른다. 하지만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스스로를 청춘이라고 말한다. 나영석 PD의 예능을 보더라도 같은 제목(꽃보다 청춘) 안에 서른 살과 여든 살의 사람들이 모두 포함된다. 그들은 아직 우리는 젊다는 자기최면을 걸면서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열정을 기성 세대는 청춘이라는 단어에서 찾는다. 그들이 표현하는 청춘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 자라나는 새싹으로 표현되는 청춘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대중적인 광고 안에서 청춘은 길거리 연주를 위해 끼니를 삼각김밥으로 대신하는 순간조차 아름답다(한화 생명). 아르바이트가 힘들어도 자양강장제 하나 까면 금방 힘이 난다(박카스). 하지만 정말 청춘은 그렇게 긍정적인가? 오히려 우리는 노력을 노오오력이라고 일부로 길게 부르면서 기성 세대의 말을 조롱하고 있다. 대신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보통의 삶을 원한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허튼 사람들 대신 청춘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살펴야 한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17에서 선보이는 세 편의 작품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사진 / <환호성> 스틸 컷


올해의초점2 환호성 (정재훈 감독)


어떤 목소리는 일상에서 지워지고 있다. 정재훈 감독의 2011년 작품 <환호성>에서 간간히 드러나는 청춘의 얼굴은 오늘날 우리와 비교해도 전혀 다르지 않다. 당구장이나 세차장처럼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침대에 누워서 뒤척거린다. 풍경은 바람이 어쩌다 부는 것 빼고는 변하지 않는다. 올해의 초점 부문에서 상영되는 영화에서 감독은 청년세대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영상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는 언론이 달관 세대처럼 이름을 지어주는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움직임, 소리, 빛처럼 물체가 가진 기본적인 요소에 집중한다. 여기에 설명을 하는 나레이션은 없고, 청년의 독백 역시 없다. 감각적인 이미지로 이어지는 영화는 도시의 밤과 숲의 낮을 보여준다. 그 뒤에 드러나는 청년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세계 사이에 이어서 등장한다. 그는 주어진 직장에서 일을 하지만 크게 존재감은 없고, 집에 와서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다리를 주무르는 등 자신의 몸을 추수르는 데 그친다.


<환호성>에서의 주인공은 청춘의 얼굴과 비슷하다. 세계에 뚜렷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홀로 켜진 가로등은 매일 같은 모습으로 주인공을 맞이한다. 마치 나의 존재에 따라 세상이 변할 거라고 믿는 젊은 사람들의 호기를 비웃는 듯한 인상이다. 세상은 마치 자연의 낮과 밤처럼 당연한 이치가 생겼다. 이미 완벽한 세계에 청년이 새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할 공간과 여유는 없다. 당장 일상을 유지하기 위하여 학업이나 진로를 포기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청춘들이 주위에 있다.


사진 / <불빛 아래서> 스틸 컷


국내신작전5 불빛아래서 (조이예환 감독)


어떤 목소리는 무대에서 멀어지고 있다. 조이예환 감독의 영화 <불빛 아래서>는 홍대에서 락스타를 꿈꾸는 세 팀의 밴드를 따라 움직인다. Rock’n’roll Radio, Wasted Johnnys, the Roosters는 서로 다른 개성을 가졌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같은 노선을 추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무조건 홍대에 입성해서, 후방에서 지원해줄 레이블을 찾고, 마침내 페스티발 무대에 선다. 그런 과정만 거친다면 그토록 꿈꾼 락스타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불빛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불빛 아래에서 공연을 하지만 현실적인 생계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밴드들은 무대를 갈망한다. 동시에 독자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현실적이고 평범한 욕망은 수년이 지난 밴드도 오디션으로 발길을 이어가도록 만든다. 무대는 항상 있지만 홍대의 수많은 락밴드들은 직접 찾지 않으면 쉽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메이저와 구분하여 인디라고 부르지만, 이러한 접근성의 차이는 예술가를 지원하지 않는 사회 구조 때문에 생긴다. 오랜 시간 꿈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진 성공의 길은 지나치게 좁다. 이는 모든 청춘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래서 <불빛 아래서>는 비록 음악 영화이지만 몇 곡의 노래들로 기억되지 않는다. 무대에 서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마침내 노래 하나를 끝내도 가수들의 삶은 이어진다. 좋아하는 일을 얼마나 오랫동안 할 수 있는지 청춘은 근본적으로 묻는다. 개인의 노력과 끈기에 따라 무대에 설 수 있는 시간은 달라지지 않는다. 불빛을 잡기 위하여 가수들이 나름의 단계를 밟다가 멈춘 시점부터 영화에서 청춘의 그림자는 더 분명히 드러난다.



사진 / <가현이들> 스틸 컷


국내신작전10 가현이들 (윤가현 감독)


어떤 목소리는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윤가현 감독의 <가현이들>은 세 명의 가현이 등장한다. 영화를 찍는 가현이는 알바 노조에서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두 명의 가현이를 만난다. 그들은 각자 알바 현장에서 부합리한 대우에 정면으로 반박하였으며, 그들은 자신을 비롯한 알바생을 대신해서 거리에 나온다. 정확하게는 알바 노동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무언가 가르침을 받아야 할 학생이기 이전에 정당한 임금을 받아야 하는 피고용인이기 때문이다. 한 정치인은 열악한 알바마저 좋은 경험이라고 포장했다.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청춘이 가장 먼저 접하는 일자리가 알바이지만 정해진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업주들이 많다. 그 안에서 청춘은 당장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을 위해 참고 견디는 법을 배운다.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화 안에서 가현이들은 지속적으로 만나 각자의 경험을 공유한다. 근로계약서의 갑을 관계를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알바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현이들> 안에는 짜릿한 장면들이 있다. 하나를 꺼내서 보자. 가현이가 자신이 부당하게 해고 당한 맥도날드에 들어간다. 자신처럼 알바의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들어온 가현은 과거에 주문을 받았던 주문대에 올라앉아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들의 연대는 각자 원하는 사회에 대한 그림을 더 분명하게 그린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든 청춘들을 소환하기 위하여 가현이들은 목소리를 낸다. 있는 그대로 살고 있는 청춘들에게 내가 더 살아봐서 안다는 식의 훈수는 통하지 않는다.



글 / 데일리팀 이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