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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17 Daily 06_ [이슈기획]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는 것

  • 작성일2017.03.28
  • 조회수2,336


[이슈기획] ‘가족’ –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니길 바라는 것



가족은 말하자면 한 개인의 시작점이다. 어떠한 형태의 가족이 시작이고, 가족이 없다면 그 또한 시작이다. 그 이후에야 내가 있다. 이미 많은 것들은 결정된 이후다. ‘나’는 <9와 0 사이>의 수민처럼 대안적이고 독립적인 삶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그 날>의 수은처럼 역사를 떠안은 상태에서 시작하기도 하며, <멀리있는 그대와 가까이 있는 당신에게>의 현준처럼 가정폭력의 경험을 가지고 시작하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한 가지 모습이어야 했다. 단란하고, 화목하며, 모두가 서로를 위하고, 때로는 누군가가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면서까지 ‘가족’을 지켜야 했다. <멀리 있는 그대와 가까이 있는 당신에게>의 가족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머니는 아들들을 위해서 가족을 지켜야 했다. 이는 가족은 해체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견뎠다. 아들 현준은 애써 외면했다. 어머니를 향하는 폭력이 싫고, 아버지가 괴물 같으며, 본인에게서 그런 모습이 보일 때에는 절망스러웠다. 그러나 가족의 해체는 선택지에 없었다.


<멀리 있는 그대와 가까이 있는 당신에게> 스틸컷


반면 <9와 0 사이>의 가족은 일체감이 높다. 수민은 부모님처럼 되고 싶다. 수민에게 부모님은 따라잡아야 할 목표다. 그러나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갈 때, 본인이 그려온 스무 살의 모습, 스무 살에 하고 싶던 독립의 모습과 부모님의 그림 사이의 간극을 느끼기 시작한다. 닮고 싶던 부모님과 본인의 사이에서 수민은 이제 막 갈등을 시작한 참이다.


<그 날>의 가족에게는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파악해야 하는 맥락이 있다. 수은의 외할아버지는 북한군 출신이다. 남한에서는 전쟁포로수용소에 있었으며, 북에는 두고 온 가족이 있다. 수은은 이런 사실만으로는 외할아버지의 자살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외할아버지가 왜 자살을 택했는지 알고 싶다. 외할아버지가 있었던 곳, 만났던 사람, 했던 일과 했던 생각을 최대한 좇아보고 싶다. 하지만 엄마와 시작부터 갈등이다. 엄마는 계속 수은에게 그런 영화를 찍는 것이 본인에게 상처인 것을 왜 모르냐며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본다.


<그 날> 스틸컷


감독들에게 가족을 이해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했던 일, 혹은 하지 않고서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를 위해 감독들은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는 감독이 가족을 이해하려는 시도와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담는다.


<멀리 있는 그대와 가까이 있는 당신에게>의 안현준 감독은 물론 영화를 찍기 시작할 때에는 예상하지 못했을 방법으로 본인 자신, 그리고 세상과 화해한다. 영화에도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감독은 몇 년에 걸쳐 가족을 촬영하고, 감독은 그를 보며 수없이 편집하고 수없이 여러 번 서사화하려 시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계속해서 실패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이래서 이런 사람이야’ 식의 빈약한 설명으로는 혐오하면서도 사랑하는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답답한 어머니를, 의지하고 존경하는 형의 자살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은 빈번한 서사화의 실패 이후에, 마음은 오히려 누그러졌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의 순간이 찾아온다.


<9와 0 사이> 스틸컷


<9와 0 사이>의 ‘수민’과 김수민 감독은 이제 막 의문을 가지게 된 참인 것으로 보인다. 닮고 싶던 부모님과 그들이 늘 해주던 독립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독립’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있었는데, 막상 열아홉 살과 스무 살 가운데에 서 있자니 모든 것의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지를 않는다. 짧은 영화이지만 김수민 감독이 그 간극을 알아차린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마 다시 시간을 들여 그 간극이 어디에서 오는지 고민하고, 어떻게 그 간극을 해소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 날>은 위에서 말했듯 조금 더 복잡하다. 외할아버지를 이해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두고 내내 수은을 원망하는 엄마도 이해해야 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외할아버지를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은 수은과 그 옆에서 그를 ‘막무가내로’ 말리는 엄마만이 나온다. 영화 안에서의 수은은 엄마를 사랑하기에 더 채근하지 않을 뿐, 분명 엄마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외할아버지를 이해하고 싶고, 갈등은 계속된다. 꽤 오래 촬영을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엄마와 계속 동행하며 수은은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 수은의 이해가 시작되는 장면이다. 외할아버지가 두고 온 가족들을 보고 싶다며, 이산가족 신청을 하고 싶다는 수은에게 엄마는 “너한테는 그게 마지막이지만, 우리는 아니야. 그게 시작이야” 하지만, 엄마는 망망하게 서서 망원경으로 북쪽을 한참 바라본다. 정수은 감독은 그 이후로 영화를 제작하는 내내 그 이해를 가지고,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을 목격하며 만들었을 것이다.


<그 날> 스틸컷


가족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서야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겠는 것은, 감독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모두에게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의 일, 가족의 구성원이 있을 것이다. 가족은 늘 어렵기만 하고, 이해하려 했을 때 밀려올 수많은 과제들이 두려워 피하게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세상과 화해하거나 이해하는 것도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언제나 가장 적극적인 감정이다. 나의 경험 안으로 끌고 들어와 단 하나의 서사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역사와 삶 전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때 가능한 일이기에 그렇다. 그 과정에서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지 않았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일을 결국에는 해내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다. 세 감독 역시 결국에는 가족과 세상을 이해했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세 감독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글/ 데일리팀 이은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