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뉴스레터

      뉴스레터      

인디다큐페스티발2017 Daily 06_ [리뷰] 국내신작전6 시 읽는 시간

  • 작성일2017.03.28
  • 조회수2,938





조용한 혁명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길 바라고 있다(이랑/신의 놀이). 하지만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인 나는 당신이 흥미를 잃어 갈 때마다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들려지는 게 힘들었다(곽푸른하늘/읽히지 않는 책). 내가 낳은 것은 결국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라서 거기에는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하마무/살아있는 쓰레기).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다(신해철/민물장어의 꿈).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롭지만(김남주/자유), 바람과 파도와 밤과 비와 오후와 고요만이 판을 치는 이 마을로 온 것은 어쩌면 잠자는 자유를 찾아서가 아니었을까(이청하/지금). 지난 시절을 잊었고 죽은 친구들을 잊었고 작년에 어떤 번민에 젖었는지 잊은 나는 오늘 달력 위에 미래라는 구멍을 낸다(심보선, 오늘 나는).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별 시덥찮은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하였다(임경섭, 죄책감).


첫 번째 문단에서 나는 앞으로 소개할 영화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읽은 시의 일부분과 좋아하는 가수의 노랫말을 이어보았다. 같은 문장이라도 앞 뒤에 다른 문장을 가져오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형성한다. 이수정 감독은 영화 <시 읽는 시간>에서 자신과 인연이 닿은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이 좋아하는 시를 읽도록 유도한다. 영화에서 시는 자신이 살면서 부딪힌 문제를 대변할 수 있는 언어가 된다



사진/ <시 읽는 시간> 스틸컷


영화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관객의 시선에 따라 언제든지 재배치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경 안정제를 먹으면서까지 회사 생활을 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퇴사를 선택한 오하나 씨와 20년 동안 녹음실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몇 년 동안 나의 존재를 보장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김수덕 씨를 우리는 서로 앉히고 그들이 읽은 시를 들을 수 있다. 얇은 두께지만 다양한 직업군의 다섯 사람이 읽는 시는 서사적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맥락은 없으나, 이들을 하나의 카메라로 담으려는 감독의 노력은 어떤 결실을 맺는다.



시집의 어떤 문장은 책장을 넘기던 손을 붙잡고 나를 다른 세상으로 안내한다. 예를 들면 시를 읽는 사이에 마을의 계절이 바뀌고, 나는 10년 동안 개발이 멈춰 있는 어느 폐허의 길을 걷는다. 나는 한 장소와 시간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조용한 혁명이다.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겪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비관하지만, 전혀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의 화자로서 구절을 읽을 수 있다. 당장 어떤 시를 좋아하는 지 고르고 읽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서로에게 어울리는 문장을 읽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말도 남길 수 없을 정도로 황망한 마음은 시를 읽으면서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된다. <시 읽는 시간>은 자신에게 맞는 시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개인적인 영화가 아니다. 대신 주변의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목소리로 읽는 문장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시를 읽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동시에 흔하지 않다. 단순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혁명이라고 높여서 부른다.




글/데일리팀 이해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