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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17 Daily 08_ [스케치] 시네토크2_역사 다시 쓰기 또는 대항-기억 만들기로서의 다큐멘터리

  • 작성일201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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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17 Daily 08_ [스케치] 시네토크2_역사 다시 쓰기 또는 대항-기억 만들기로서의 다큐멘터리



<옥주기행>, <용왕궁의 기억>, <도큐멘트 70 : 속물에 대한 6가지 테제>, <빨간 벽돌> 네 가지 영화는 이제는 역사라는 이름이 된 사건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고 현재는 어떻게 그 사건들을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있는 영화들이다.


29<도큐멘트 70: 속물에 대한 6가지 테제>를 상영한 이후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사회자로는 변성찬(인디다큐페스티발2017 집행위원), 김응수감독(<옥주기행> 연출), 김임만감독(<용왕궁의 기억> 연출), 김숙현감독조인한감독(<도큐멘트 70: 속물에 대한 6가지 테제> 연출), 주현숙감독(<빨간 벽돌> 연출)이 자리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임만 감독이 한국말이 서툰 관계로 가케모토 츠요시 통역가가 자리해주었다.


[사진| 좌측부터 변성찬 사회자, 김응수감독, 김임만감독, 가케모토 츠요시 통역가, 김숙현감독, 조인한감독, 주현숙감독(촬영/행사기록팀 김종헌)]


변성찬: 우선 다섯 명의 감독들의 작품 설명과 만든 계기를 부탁한다.


김응수: 내 영화를 설명하기 전에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내 영화는 역사, 기억, 대항과 관련이 없는데. (웃음) 어느 순간부터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구조가 많은 것을 보며 강박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화를 찍을 때 나는 역사를 찍는다고 생각하지 않고 한 사람의 삶을 찍고 기록한다. 이번 영화도 예술가로서 소리의 아름다움을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전달 하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역사라는 테두리 안에 넣는 것을 보고 이렇게 규정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연구가 게으른 것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김임만: <카마가사키 권리 찾기(2011)>를 촬영하면서 <용왕궁의 기억> 또한 촬영 했다. 의도적으로 영화를 만들자고 해서 찍은 것은 아니나 계속 나의 가족과 카마가사키 일용직 노동자를 찍는 것 그 자체에 집중을 하였다. 그것이 주체였다. 집중적으로 용왕궁을 찍기로 마음 먹은 건 철거가 확실시 되면서 연구자들이 용왕궁의 자료보존을 목표로 영화를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장면을 넣은 것은 어머니가 아프면서 그녀를 위로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두 주제를 엮어 만들게 되었다.


변성찬: <도큐멘트 70: 속물에 대한 6가지 테제>를 찍은 두분 중 한 분은 <콜렉티브 워크>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김숙현: 전성권감독이 주축이 된 작업이다. 이 팀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2015년 이였다. 박근혜정권 아래에 있는 우리의 어려움을 방법론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70년대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 70년대의 경험과 대중문화의 격노 속에서 그것의 텍스트들을 공부했다. 70년대는 지금 상황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기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종의 합의가 되어 이 영화를 찍게 되었다.



주현숙: 처음 기획은 오 년 전 이였다. 박근혜 정권의 답답함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쪼그라진 느낌을 받았다. 뭔가 프로파간다 적인 영화를 찍고 싶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인간에게는 생존의 논리와 삶의 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존의 논리가 더 강하다. 하지만 사람다운 삶은 삶의 논리가 더 강할 때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우리가 어떠한 부당함에 투쟁을 할 때 그것을 포기하게 된다면 오히려 생존을 위해서는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투쟁하는 것은 삶의 논리를 더 가지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구로 동맹파업은 삶의 논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적합한 사건이라 생각했다. 짧은 기간 안에 투쟁하고 다 흩어졌으므로 그 사건 자체에 애증이 있다. 주축이었던 사람들은 블랙리스트가 되어서 삶의 토양이 바뀌었다. 그 상처를 객관화해서 다루고 싶었다.


변성찬: 주현숙감독에게 물어보고 싶다. 구로동맹 파업 당시 주축 이였던 20대 여성들, 그리고 지금의 현재 청년들을 촬영했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만나는 접점의 장면들은 없었다. 그런 장면들 넣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주현숙: 마음의 풍경을 담고 싶었다. 청년들이 구로동맹파업의 개요를 잘 이해하도록 그 사건과 비슷하게 실험극을 하고 싶었다. 청년들을 한 공장에 몰아 넣고 한 명의 해고를 결정해달라고 부탁했다. 5명의 청년들은 짧은 기간 동안 몰입하였고 제 나름대로 잘 담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만나는 부분은 없다. 남들에게 이 영화에 대한 피드백은 받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둘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를 제일 많이 물어봤다. 그런데 그 둘을 만나게 하면 세대간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일부러 넣지 않았다.


변성찬: 조인한감독에게 묻고 싶다. 도큐멘트에 나오는 다른 영화들은 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만주활극>60년 대 중, 후반쯤이다. 반칙 아닌가? (웃음)


조인한: 반칙을 한 이유에 대해 물으신다면 확보할 수 있는 70년대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 또한 배경이 만주인 이유는 우리가 만주를 어떻게 경험했는지, 그들은 어떻게 만주로 올라가게 되었는지? 또 만주로 많은 사람들이 넘어가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60년대 중, 후반 이여야 했다. 그래야 달라지는 시간들로 인해 흥미를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사진| 김숙현감독(촬영/ 행사기록팀 김종헌)]


변성찬: 김숙현 감독에게 묻는다. <총천연색 특선만화>70년대의 만화를 조합하여 70년대의 단어의 모순을 비꼰 영화이다. 특히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훈육에 대한 언어들이 많이 나온다. 훈육의 언어가 정리 될 수 있는가?


김숙현: 만화의 텍스트를 바꾸어 영화를 만들었다. 훈육의 언어들을 정리하여 리서치 했다. 70년대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신문을 보았고 특히 어린이신문 기사를 많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이가 주제인 영화를 만들었다. 어린이 신문을 보며 모순적인 훈육의 언어를 많이 보게 되었고, 13이라는 숫자로 훈육의 언어를 완성하였다.


변성찬: 김임만 감독에게 묻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면 감독이 자신을 놈팡이 취급하고 구박 받으며 촬영한다. 특히 영화에서 아버지가 정말 싫어하는데 이 영화를 보여줬나?


김임만: 이 영화는 10년 이상 촬영했다. 찍으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찍는 사람, 찍히는 사람 다 변화했다. 처음 두 분을 찍겠다고 말씀 드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 두 분다 싫어하셨고 아버지는 카메라를 부셔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싫어하셨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돌이켜 보면폭력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폭력. 지금 돌이켜보면 폭력의 근원에는남성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제주도에서 체험 했던 기억도 있을 것 이다. 아버지는 4.3사건 한달 동안 책팔이 라는 명목 하에 폭력을 당하였다. 일본에 온 뒤에도 밖(일터)에서 힘들게 되니 가정 속에서 폭력을 가했다. 그러한 기억이 있는 분이 어머니가 아프게 되면서 아버지가 변화하였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가족에 대한 극진한 마음을 알고 싶었기에 어머니에 집중했다. 아직 아버지에게는 영화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조만간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이야기하고 싶다.


변성찬: 김응수감독에게 묻고 싶다. <옥주기행>은 소리꾼의 소리를 편집하지 않기에 러닝타임이 길다. 그것은 존 지안비토가 인터뷰를 할 때 사람들의 말을 끊지 않는 윤리와 비슷한 것인가?


김응수: 남도의 소리들을 담을 때 엉킨 소리에 대한 편집은 있지만 소리를 할 때는 절대 자르지 않았다. 앵글을 바꾸었지만 그분들의 소리는 편집할 수 없었다.


사진/ 행사기록팀 김종헌

글/ 데일리팀 장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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