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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18 Daily_05 [대담] 싸우는 타자의 말과 몸, 이를 현시하는 카메라 - 하라 카즈오 특별전

  • 작성일2018.03.26
  • 조회수1,087

‘싸우는 타자의 말과 몸, 이를 현시하는 카메라’ 하라 카즈오 대담


3월 25일(일) 13시 하라 카즈오의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 상영 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2관에서는 ‘싸우는 타자의 말과 몸, 이를 현시하는 카메라’ 대담이 열렸다. 류미례 감독과 문정현 감독이 참석하고 신은실 집행위원이 진행한 이번 대담은 데뷔작인 <굿바이 CP>(1972)부터 신작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2017)까지, 대상과 현상을 현시하는 하라 카즈오의 영화들과 한 대상을 오랜 기간 집요하게 포착하는 감독의 카메라를 중심으로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신은실 집행위원 (이하 신): 우선 신작인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을 어떻게 보셨는지 묻고싶다.


문정현 감독 (이하 문): 개인적으로 느꼈던 하라 카즈오 감독과 영화를 생각해보면, 기존의 영화들과 신작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에 오기까지 변화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굿바이 CP>나 <천황군대는 진군한다>(1987) 등의 작품에서 대상을 찍어내는 방식이 같은 방식이기는 하지만, 대상이 되는 분들에 따라서 기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찍고 있는 것에 따라서 각각의 영화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면에서 대상, 찍고 있는 하라 카즈오 감독, 그리고 카메라가 형성하는 관계가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류미례 감독 (이하 류): 감독으로서 소수자 집단을 담는 영상물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큰 원칙이 있다면 단일한 집단으로 사고하지 않는 것이다. 전작들과 신작에 오기까지 변화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일관되게 관철되는 것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오늘도 영화 상영 중에 관객석에서 몇 번 폭소가 터졌는데. ‘이’ 대목에서 ‘이’ 사람이 ‘이렇게’ 얘기할 것이라는 관객의 생각을 번번이 배반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영화의 큰 흐름에서 이러한 말이 적당할 것이라는 것과 무관하게 그 인간의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오롯이 살리는, 이러한 태도는 하라 카즈오가 <굿바이 CP>부터 최신작까지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했다.


신: 하라 카즈오의 영화를 일본 영화사 속에서 적대의 논리, 가담의 논리로 평가하곤 한다. 일본 다큐멘터리에서 얘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오가와 신스케가 정부의 카메라에 반대해 전적으로 농민의 편에서 카메라도 가담해 같이 싸웠고, 그것이 하라 카즈오가 영화를 시작했던 1970년대 초반 일본 영화계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에 반해 하라 카즈오와 그의 카메라는 전적인 가담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굿바이 CP>에서는 장애인들과 비장애인으로서의 자기를 바라보는 경계, 그리고 각자가 선 토대가 명확하게 다름을 드러낸다. 이것과 관련해 하라 카즈오는 인터뷰에서 ‘적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한국 다큐멘터리가 공감, 가담, 동일화, 이러한 면에 많이 서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개봉한 <공동정범>(2016, 김일란,이혁상)을 제외하면 좀처럼 인물이나 관계에서 공동체의 균열이 보이거나 영속적이지 못한 공동체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찍는 감독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문: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됐던 하라 카즈오 감독과의 대담 자리에서 감독의 말 중, 자신에게 영화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그리는 것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던 말이 기억난다.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도 가담과 적대의 논리를 넘어서서 기본적으로는 영화 안에서 피해자분들의 권리 찾기에 크게 동의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굿바이 CP>나 <천황군대는 진군한다>등의 이전작들에서도 동의하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희로애락을 얘기하는 하라 카즈오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절대적인 진실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 피해자들은 이럴 것이다, 혹은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이런 단면적인 모습을 거부한 채로 인간 본성의 모습을 관찰하는 태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편으로서, 혹은 대변자로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찍어내는 그것 자체에 대한, 인물 자체에 대한, 구조 그 자체에 대한 관계로서 보고있다는 생각한다. 자신을 어떤 선인으로 설정하지 않고 자기도 자기 스스로를 모르는, 과정을 함께 관찰하고 추적하며 그 안의 부조리와 오류의 지점을 응시해내는 영화들이 아닌가 싶다. 가담의 지점, 적대의 지점이 분명 있지만 시스템에 대한 반감들과 모호한 세상에 대한 재인식의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을 한 번 더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지점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이게 뭘까?라고 질문하는 감독과 카메라의 태도가 아마도 우리가 많이 접했던 영화와는 확연하게 다른 지점들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류: 감독들은 끊임없이 권력자로서의 자기 자리에 대해서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매끈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울퉁불퉁한 것들을 깎아내야만 하고, 등장인물들의 어떤 이야기들을 삭제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하라 카즈오가 굉장히 인간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적대와 가담의 논리라는 것에 있어서는 다른 영화인들과는 다르게 두 가지 정체성을 갖고 상황에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를 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말하자면 활동가로서 찍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는 절대로 당신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자기 한계를 인식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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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은 관객들이 느낀 하라 카즈오의 영화에 대해 말하고, 영화와 관련해 궁금한 점을 패널로 참석한 두 감독에게 묻고 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번 대담은 적대하면서, 또 가담하면서 하라 카즈오의 카메라가 비추는 것과 그것을 철저히 ‘찍는다’는 것으로 수행하는 하라 카즈오의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글/ 데일리팀 손혜주

사진/ 데일리팀 이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