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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19 Daily_06 [인터뷰] 국내신작전 15 경청의 온기 –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 작성일2019.03.26
  • 조회수721

[인터뷰] 국내신작전 15 경청의 온기 –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개인 간의 유대가 약해진 현대 사회에서 때로는 스스로가 고립된 섬처럼 느껴진다. 나의 고통과 하소연을 알아주고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종이컵 전화기가 떠올랐다. 종이컵 두 개를 이어주는 가느다란 실을 통해 소리와 함께 온기까지 전해졌다. ‘국내신작전 15 – 경청의 온기’에서는 파편화된 개인들을 이어주는 다큐멘터리 세 편을 모았다. 각자의 손에 종이컵을 쥐여주고 연결선이 되기를 자처한 감독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겪는 사고 후유증을 담은 <례>의 권순현 감독, 조선학교 차별에 맞서 투쟁하는 재일조선인들을 조명한 <부당, 쓰러지지 않는>의 최아람 감독, 한국에서 살아가는 탈북민 아이들이 겪는 부조리함에 귀 기울인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아오리 감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 작품은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너무 지나치지 않게 보여주고자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다큐멘터리 당사자(노동자/재일조선인/탈북민)의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고,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나요?


<권순현 감독>


권순현 감독(<례> 연출, 이하 권): 저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게 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어요. 이번 영화를 비정규직 이야기로 포커스를 잡았던 게 결국엔 저도 비정규직 노동을 하고 거기서 느낀 어떤 박탈감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일에 대해서,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제가 앞으로 해야 할 노동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아요.


최아람 감독(<부당, 쓰러지지 않는> 연출, 이하 최): 제가 원래 우리나라의 식민지와 분단로부터 파생된 역사와 문제점에 관심이 많아요. 식민지로 인해서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가 생겨난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떨어져 있는 일본 땅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우리의 이야기고 우리의 역사라고 생각해요.


아오리 감독(<보이지 않는 아이들> 연출, 이하 아): 저는 살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10년간 여성인권 관련된 작품을 만들어 오다가 다른 주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북한을 주제로 선택했고, 1년간 탈북민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안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아이들이 있는 거예요. 학교도 그렇고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저는 그 불합리한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것도 아이들이잖아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좀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사건과 기억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최아람 감독>


권: 크레인 사고가 난 날은 제가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달밖에 안 되었을 때에요. 사고 이후 도저히 찍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놓친 것들이 되게 많아요. 그래서 이 영화의 구성은 크레인 사고로 잡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찍은 밀도에서는 굉장히 떨어지는 게 많아요.


최: 재판에서 지고 그분들한테 많은 일본 언론들이 까맣게 붙어서 취재를 하고 있는데 똑같이 “어떠셨어요?” 이렇게 말하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후반부에 이향대 어머니가 일본 언론이랑 인터뷰할 때는 당당하게 눈물도 안 흘리시면서 “아니요. 우리 기죽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근데 그 언론 인터뷰 다 끝나고 어머니가 저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오셔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우시는 거예요. 저도 그때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같이 껴안았던 기억이 있어요.


아: “더 힘든 일을 담으면 좋았을걸” 하는 분도 계세요. 그런데 아이들은 안 힘들어요. 왜냐면 힘든 걸 구분을 못 하는 거지. 의료보험증이 없어서 아파도 병원을 안 가고, 아르바이트하려고 나이를 속이고, 학교 수업은 갑자기 없어져요. 이런 게 늘 일상화되어 있어서 고통이나 불합리함에 대한 기준이 없는 거예요. 아이들 100명을 만나면 80명은 그렇게 아무 일도 없고 안 힘들다고 해요.




당사자의 입장에 서서 영화를 만들고자 할 때 연출자로서 가진 욕심과 상충하는 지점도 있었나요?


<아오리 감독>


권: 사실 저는 원래 영화적으로 해보고 싶은 게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크레인 사고를 옆에서 보면서 이야기꾼보다 이야기 자체가 더 중요한 이야기구나 그래서 영화적으로 뭔가 하기보다는 연대기 순으로 찍은 클립들을 나열하는 형태로 영화를 완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잘 만들려면 그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어요(영화 속 사고에 대한 발언은 1주기 기자회견에서 채록). 그런데 저같이 언저리에서 맴도는 기록만 하는 사람도 버거운데, 그 사고에서 실제로 그 광경을 보고, 생존하신 분들한테 그런 걸 요구한다는 건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생각했어요. 토킹 헤드가 안 나오는 인터뷰이들의 감정을 표현하려면 단순하게 화면이 예쁜 거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사운드로 최대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 이 형태로 가는 것이 영화에 대한 욕심으로 연출하는 것보다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영화에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그나마 이게 떳떳할 수 있는, 속된 말로 덜 쪽팔린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최: 제 영화에는 학교가 잘 나오지 않잖아요. 조선학교를 취재하려면 사전에 통일부에 신고를 먼저 해야 하고 학교 측에 신뢰도 얻어야 해요.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게 있어요. 우익들의 테러 위협이 너무 잦아서. 학생들이 외부에 얼굴이나 이름이 노출되면 간혹 학교로 ‘내가 몇 월 며칠에 몇 학년 몇 반 누구 내가 죽인다’ 이런 협박 전화가 실제로 온단 말이에요. 풍성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아이들과 학교의 안전에 대한 건데 제가 무리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아: 그 전 작품을 3년간 따라다니면서 찍어서 이번엔 다큐멘터리를 빨리 찍어 보자, 짧게 찍어보자, 아이들을 괴롭히지 말자 해서 인터뷰만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혼자 조건을 정했어요. 그런데 어리석은 접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어서 힘든 것 없는 아이들한테 힘든 거 찾아내 보라는 사람 같기도 하고, 관계 맺음이 그렇게 되지 않은 사람들한테 네 얘기를 꺼내 보라는 접근은 아니지 않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주제에 대해 좀 더 공부해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아이들을 50명 정도 더 만나서 다음 작품을 위한 인터뷰집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인터뷰집을 좀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무슨 작품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자.




작품에 출연하셨던 분들의 상황은 좀 나아지셨는지 근황에 관해서 말씀해주세요.


권: 산재 트라우마라는 게 말도 무시무시하지만 그걸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굉장히 열악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마창 거제 산재 추방 운동 연합’이라는 단체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계신 생존자분들을 전담하고 계세요. 거기에서 트라우마를 갖고 계신 생존 노동자분들을 위해서 구술집을 4월에 내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걸 보시면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얘기가 담겨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최: 3월 14일에 후쿠오카 지방법원이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는 위법이 아니라는 판결을 했는데, 역시나 하시면서도 희망은 버리지 않으셨어요. 상영 소식을 알려드리니까 자신들의 입을 통해서 말한 자신들의 이야기가 한국 땅에서 상영된다는 걸 좋아하셨어요. 관객들이 어떤 질문을 하냐고도 계속 물어보세요. 한국 관광객들이 많은 일본의 번화가에서 운동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데서 만나는 한국 관광객분들은 크게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일본 땅에도 정체성을 지키고 사는 조선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세요.


아: 출연자들은 아직도 아이니까 마음이 자꾸 변해요. 선생님한테 도움을 주고 싶으니 제 이야기는 써도 되지만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너무 슬퍼할 것 같아서 목소리는 안 써줬으면 좋겠다던가. 가끔은 어린 애니까 내가 설명했지, 나한테 인터뷰비 입금받았지, 맛있는 거 사줬지 그러니까 약속을 깨고 싶어도 못 깨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이전 작품이 친족 성폭력 다큐멘터리였는데 출연자가 원해도 제가 개봉을 안 하려고 했던 거거든요. 왜냐면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까. 근데 지금은 고민인 게 세상에 터뜨렸을 때 거기에 생기는 힘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 힘을 내가 막게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영상을 만들 때 주류 언론이 할 수 없는, 독립다큐멘터리스트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저는 요즘에는 이기는 투쟁보다 오래 하는 투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활동가들, 당사자들의 어떤 사건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영화로 감정을 전하고 싶어요.


최: 지난 이명박·박근혜 10년 동안 재일조선인 문제가 전혀 다뤄지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정세가 풀리고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지면서 한편으론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어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영상을 만들고 적지 않은 조회 수가 나온 적도 있었지만, 방송에서 한 번 다루는 그 힘이 엄청 크더라고요. 그러면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제가 최근에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우리는 '가장 마지막까지, 가장 가까이 있어 주는 사람'이 되어주자,는 생각을 했어요.


아: 제가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라고 세팅하고 뭘 하는 건 없어서 근데 태생이 이러면 그냥 가만히 만들어도 아웃풋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엊그제 다른 영화를 보신 관객분이 “이거는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선이야”라는 말씀을 하시던데 저도 만들다 보면 그런 게 나오지 않을까... 근데 뭐 저는 제가 이 위치여서가 아니라 그냥 그 아이들과의 연을 맺었기 때문에 약간 내 민망함(아이들이 영화를 좋아해 줄지)을 책임감으로 돌려서 지켜봐야겠다라는 생각은 있어요.




글/데일리팀 박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