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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올해의 초점' 상영작 발표

  • 작성일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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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올해의 초점’ 부문에서는 총 9편의 작품을 상영합니다. 현재 진행형의 사건 앞에서 영화가 택하는 기록의 다층적 방법을 보여주는 작품들의 기획전과, 최근 신작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색채로 기록을 이어나가는 작가들을 톺아보는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 이십 년 가까운 협업 기간 동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영화적 언어로 보여주는 ‘김동령·박경태·박인순’이 함께 구축한 시공에 대한 기록, 신자유주의와 노동 유연화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자신이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성장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해 온 김미례 감독의 작품세계, 일상의 소소한 기억들이 곧 존재의 역사가 됨을 일깨우는 원태웅 감독의 영화적 태도를 살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각 주제와 이슈에 대해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누고자 포럼과 시네토크를 함께 진행합니다.



* 진행형의 사건 앞에서 - 영화가 취하는 기록의 세 가지 방법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지난해 공개된 세 편의 다큐멘터리, 김성민의 <증발>, 장윤미의 <깃발, 창공, 파티>, 주현숙의 <당신의 사월>을 통해 종결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각 영화가 택한 방법론을 면밀히 검토해 보려 합니다. 저마다의 영화는 전혀 다른 사건을 주목, 상이한 형식과 태도로 접근하고 있지만, 이들 영화가 주목한 사건은 현재적, 당대적, 구조적, 다층적 원인에서 비롯된 결과이며 사건 당사자 개개인에게 커다란 변화를 낳은 실존적 문제라는 점에서만큼은 공통됩니다. <증발>은 실종된 딸아이를 17년간 찾아 헤매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가족을 잃은 후 저마다의 아픔을 떠안고 사는 가족 구성원의 복잡하고 내밀한 심경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실종 아동 찾기의 적극적인 방편이 되고자 하는 동시에 수사와 탐문의 장르적 방식으로 극적 긴장을 만들며 영화를 둘러싼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깃발, 창공, 파티>는 ‘전국금속노조 KEC 지회, 임금 단체 협상에서 8년 연속 평화적 무파업 타결’이라고 공공연히 알려진 이야기 뒤에 가려져 있던 노조의 역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2010년 파업 이후 회사의 노조 탄압과 노조 간 차별로 교섭 대표 노조의 지위를 잃은 KEC 지회는 2018년 임단협 과정에 직접 참가하기로 합니다. 영화는 투쟁이 일상이 된 노조원들의 매일 매일과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그들의 치열한 논의의 과정, 교육 현장 등에 깊숙이 입회해 그곳을 기록합니다. <당신의 사월>은 세월호 참사 이후 5년이 흐른 뒤 참사가 남긴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고 용기를 내 제안합니다.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이 아닌 그들 곁에서 참사를 목격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했던 시민들이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와 그 사건이 그들에게 남긴 내밀한 흔적의 발화입니다. 이 주제에 관해 깊이 알아보기 위해 영화제 기간 중 발제와 토론을 겸한 포럼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망각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도 일상의 회복을 더 적극적으로 말하고 시도하길 바랍니다.

<증발>(2019, 김성민)
<깃발, 창공, 파티>(2019, 장윤미)
<당신의 사월>(2019, 주현숙)



* “제국의 인종주의”에 저항하기

 

김미례 감독은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던 부친이 IMF 시기를 거치며 겪는 어려움 때문에, 일용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에 눈뜨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대구건설노조 투쟁기록>(1997), <고요한 실업의 나라>(1998), <IMF 1년, 두 번의 겨울>(1999) 등을 푸른영상과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만들며 다큐멘터리 이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면화하는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2001), <동행-비정규직 여성에 관한 짧은 보고서 2>(2002) 연작,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해 3년간 투쟁한 레미콘 운수 노동자들의 이야기 <노동자다 아니다>(2003),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건설 노동 현장의 국제 연대와 역사를 담은 <노가다>, 세 차례의 총파업으로 과적 악법을 바꿔낸 덤프 운수 노동자들을 좇는 <차라리 죽여라-전국덤프노동자총파업 2005~2006>(2006), 한국 여성운동사와 노동운동사에서 주요 사건으로 꼽히는 ‘이랜드 사태’를 투쟁의 중심에 선 중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곁에서 기록한 <외박>(2009), ‘인력 퇴출 프로그램’과 맞서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을 다루는 <산다>(2013)를 제작했습니다. 이렇듯, 김미례 감독은 신자유주의와 노동 유연화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도 자신이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성장하는 이들과 영화로 연대해 왔습니다.
김미례의 신작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1974년 8월 도쿄 한가운데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건물에서 폭탄을 터뜨려 8명을 죽게 하고 3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일제 침략 기업과 일본의 전쟁 책임이 여전함을 촉구했던 ‘늑대’ 부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김미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일견 낯설게 보일 수도 있는 소재입니다. 지금도 사형수와 무기징역수, 국제수배자로 살아가며, “테러범”으로 지탄받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궤적은 일본 안팎에서 오랜 기간 논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한일 관계를 낳은 원인이 되었던 일본 제국주의 지배가 식민지의 물자 수탈뿐 아니라 강제 징용 등 노동력 착취를 근간으로 했던 점, 이에 저항한 일용직 노동자와 룸펜 프롤레타리아들의 국제연대가 존재했음을 <노가다>에서 이미 김미례 감독이 주목하고 가시화했음을 기억해야 할 터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전후 질서를 건설한 자본에 굴하지 않고 현대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폭력 및 자본과 결탁하여 존속하는 일본과 같은 “제국으로부터, 인종화된 계급으로부터 이탈”하는 해방을 꿈꾼 공동체였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을, 우리의 실천과 저항을 함께 되새길 기회를 제공하는 소중한 역작입니다. 감독과 관련 연구자가 함께할 시네토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2019, 김미례)
<노가다>(2005, 김미례)



* 인간의 시간, 원태웅 영화의 진화

원태웅 감독의 첫 영화 <장 보러 가는 날>은 인간의 시간을 목격하게 했습니다. 먹고, 자고, 빈둥거리는 시간. 반복하여 노동을 팔고 상품을 사는 시간 속에서, 포클레인에 산이 깎여 나가기도 하고 밥을 벌던 삶의 터전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동안에도 도시의 날짐승은 변함없이 시장통에서 먹이를 찾고, 세월 속에서도 희미해지지 않는 사랑의 정표가 있음을 영화는 밝혀 보여주었습니다. 이른바 ‘사적 다큐멘터리’ 또는 ‘일인칭 다큐멘터리’라 분류되기도 하는 <장 보러 가는 날>은 렌즈 앞에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가족을 세웁니다. 음성 내레이션 없이 자막만으로 속내를 들려주며 주로 고정카메라로 ‘대상’을 응시하는 형식 덕에 지속하는 시간이 이루는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되 형언할 순 없는 아스라한 감정들을 감각하게 했습니다.
인간의 감정들로 채워진 소소한 기억들이 곧 뭇 존재의 역사가 됨을 일깨우는 감독의 영화적 태도는 <아들의 시간>(2014)에 이어 <나의 정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나의 정원>은 제목에 ‘나’라는 인칭 대명사가 등장하듯 여전히 ‘가족 시네마’의 형태를 유지하는 한편,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타인이 중심인물로 처음 등장합니다. 원태웅 감독은 근작 <나의 정원>에서, 이재헌 작가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과 그림을 그리는 노동의 시간 그리고 그 결과물인 작품을 기록합니다.
여전히 인간의 삶을 이루는 시간과 노동, 감정들을 지켜보며 이를 영화적 진경으로 재구성하는  <나의 정원>은, 예술가와 창작 노동에 대한 <피카소의 비밀>(앙리-조르주 클루조, 1956)이나 <자라 슈만의 그림>(하룬 파로키, 1978) 등의 계보를 잇는 빼어난 다큐멘터리이기도 합니다. 첫 작품 <장 보러 가는 날>과 최신작 <나의 정원>을 함께 보고 감독과 대화하는 시네토크에 동참하셔서 원태웅 영화의 진화를 확인하길 바랍니다.

<나의 정원>(2019, 원태웅)
<장 보러 가는 날>(2012, 원태웅)



* 여기와 다른 곳, 김동령·박경태·박인순이 함께 구축한 시공

 

기지촌을 “외부와 연결된 장소”로 그리고 싶었던 박경태 감독은 그곳에서 만난 박인순 씨와 영화 <나와 부엉이>를 만들었고, 기지촌의 시간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파악하며 <아메리칸 앨리>(2008)를 제작한 김동령 감독과 <거미의 땅>(2012)을 공동연출했습니다. 역시 박인순 씨가 출연한 <거미의 땅>이 일본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때, 박경태 감독은 영화제 측에 보내는 긴 편지를 씁니다.
“<나와 부엉이>는 기지촌 골목에서 ‘히빠리’하며 사는 박인순의 일상과 미술 심리치료 과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카메라는 차츰 박인순과 친해지며(익숙해지며) 동시에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고통을 표현하고, 미술 심리치료를 통해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 대한 것입니다. 실제로 박인순이 거쳐 온 과정이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그것이 영화-카메라로 기록, 편집, 재구성되어 특정한 시퀀스 속에서 배치-편집될 때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에 있습니다. 관객들은 점차 밝게 변화하는 박인순과 그녀의 그림에 친근함을 느끼고 그녀에게 동화되면서(익숙해지면서) 그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기지촌과 성매매 여성에 대한 편견을 조금은 버리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중략] 하지만 출연자들은 한 번도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성매매 근절을 위한 행사에 증언자로 성매매 근절 운동을 위해 불려갔을 뿐입니다. [중략] 행복하게 마무리되는 영화와는 달리, 박인순의 삶이 여전히 고통스럽다는 것은, 결국 관객과 시민단체, 감독이 보고 싶은 시선의 방향과 그녀의 방향이 어긋나 있음을 뜻할지 모릅니다. 즉 극장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관객과 감독/시민단체가 공모하여 매우 사실 같은 판타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진짜 현실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 즉 환영(幻影, phantasm)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결국 친밀함이란, 그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상관없이, 카메라에 익숙해진 주인공의 ‘연기’가 관객에게 일으키는 ‘착각’일 수 있습니다. [중략] 그렇다면 차라리 터놓고 그냥 연기를 해보는 방향으로 재현 방식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면을 서로 의논하여 미장센을 만들고 미장센 속에서 실험 관찰하기보다는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장면을 같이 연출하는 것입니다. [후략]”(「이곳 저곳 사이 이야기」 중에서, 국립현대미술관 MFV총서1 『이미지의 막다른 길』 수록)
<거미의 땅>의 후속작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도 김동령·박경태 감독은 박인순 씨와 함께 작업했으며,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첫 관객과의 대화에는 드디어 박인순 씨도 함께했습니다. “반복되는” 기지촌이라는 시공 속에서 <나와 부엉이>에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 이르는 이십 년 가까운 협업 기간 동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제작진에게 듣는 귀한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김동령, 박경태)
<나와 부엉이>(2003, 박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