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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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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장치로 쟁취한 라디오의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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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DOF 발견과 주목’ 6월 프로그램 < Play On > GV

‘SIDOF 발견과 주목’ 6월 프로그램 < Play On > GV

일시
17.06.20(화)
장소
인디스페이스 ( IndieSpace )
진행
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참석
변규리(< Play on > 연출), 김진억(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
토크
2017년 ‘SIDOF 발견과 주목’의 포문은 변규리 감독의 [Play on]이 열었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17 개막작이자 관객상을 받은 이 작품은 SK브로드밴드 인터넷 설치 기사들이 노동 현장에서 부닥치는 부당한 근로 계약과 열악한 근로 환경을 폭로하고 있다. 동시에 그들이 고용 구조 개선과 근로 복지 향상을 요구하며 원청회사와 맞서 싸웠던 장기투쟁의 기나긴 과정을 진중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한 이 영화는 보이는 라디오 형식을 차용해 리드미컬하게 서사를 전개하는 그 특유의 영화적 형식으로 평단과 관객의 고른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아래 대담은 2017년 6월 20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SIDOF 발견과 주목’ 6월 상영이 이후에 이루어진 관객과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이도훈

평일 늦은 시간에 영화 관람하러 와주신 관객 여러분 고맙습니다.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든 변규리 감독님과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국장님이 참석해주셨습니다.

변규리

안녕하세요. [Play on]을 연출했고 현재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규리입니다. 작품에서 얼굴은 안 나오지만 계속 목소리로 출연한 사람이고, 예전에는 구로FM에서 활동했습니다.

김진억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희망연대노조는 초기업단위 노조인데 방송통신사업장과 다산콜센터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고, 총 9개의 지부에 3천 명 정도의 개인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이도훈

[Play on]에 등장하는 노동자분들이 모두 희망연대노조 소속입니다. 이곳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직되어 있고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진억

기존의 노동조합처럼 임금인상이나 노동요건 개선 같은 작업장 투쟁도 하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노동자들의 삶의 변화를 지향하는 곳입니다. 생산 공간과 작업장 활동뿐만 아니라 재생산 공간에서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고 있어요. 가장 먼저 지금은 딜라이브 지부로 바뀌었는데 씨앤앰(C&M)지부가 만들어졌어요. 정규직 노동조합을 먼저 만들었다가 이후에 외주업체 노동조합을 만든 다음에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를 만들었고, 현재 방송 통신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콜센터 여성 노동자들 쪽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중입니다.

이도훈

변규리 감독님은 구로 FM에서 활동하시던 중에 영화 속에 나오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분들을 만난 거로 알고 있습니다.

변규리

2014년도부터 지역공동체라디오 구로FM에서 PD로 활동할 당시에 만났어요. 구로FM은 구로민중의집이라는 공간에 자리하고 있어요. 2013년 11월 즈음부터 구로민중의집에서 공간 나눔 사업으로 지역 노동자분들이 토론이나 회의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무료로 대여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금천광명지회 노동자분들이 파업을 앞두고 몇 주간 그곳에서 토론한 적이 있어요. 투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의뢰했고, 또 SK브로드밴드 노조의 활동과 소식을 전하는 팟캐스트 프로그램 “노동자가 달라졌어요!’를 2주마다 한 번씩 함께 진행했어요.

이도훈

뭔가 자연스럽게 만남이 성사되고 그게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이어진 거네요. 라디오 PD로 활동하면서 촬영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결정적으로 어떤 끌림이 있어서 이 작품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변규리

평소 신생 노동조합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제 사적인 배경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공장노동자로 일 하셨어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일하시는 걸 보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고 그분들의 사회적 지위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어요. 신생 노동조합의 투쟁 이유, 그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 그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어떻게 하고 그 과정에서 부닥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어요.

이도훈

국장님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진억

의식 높은 활동가의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조합원들의 일상적인 삶과 투쟁을 담백하고 진솔하게 담고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장기투쟁을 하면서 힘들게 싸웠다 혹은 대단한 투쟁을 했다고 말하거나 그렇게 표현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서 희망을 얻고자 투쟁을 하는 건데, 장기투쟁은 하면 할수록 고통이 가중돼요. 인간적인 갈등, 생계문제, 가정불화 등의 어려움이 생겨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일반 조합원들은 떨어져 나가고 의식과 결의가 높은 간부와 열성 조합원들만 남아요. 결의에 차 있는, 나중에는 활동가가 될 영웅들만 남는 거죠. 우리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그분들도 결국에는 수많은 노동자의 어려움과 희생 속에서 만들어지는 거로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영웅적인 투쟁이라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이도훈

엔딩 크레딧에 보면 희망연대가 자문으로 들어가 있어요. 추측건대 두 분은 예전부터 안면이 있는 사이, 특히 현장에서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일 거로 생각합니다. 국장님께 여쭙고 싶은데 감독님에 대한 첫인상이 어떠했나요?

김진억

처음에는 학생인 줄 알았어요(웃음). 어느 순간 현장에 와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항상 와 계셨어요. 우리에게 관심을 두고 촬영을 해주셔서 감사했고, 또 감독님 인상이 되게 부드럽고 좋으시잖아요. 여러모로 투쟁 현장에서 많은 힘을 실어주셨죠.

이도훈

오늘 상영을 위해 국장님이 리뷰도 써주셨어요. 좋은 비평은 한 작품을 위해 선언문을 대신 써주는 거로 생각하는데, 국장님의 글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인터넷 설치기사 노동자분들을 유령에 빗댄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김진억

인터넷이나 IPTV, 케이블 방송을 설치하고 그것이 고장 나면 수리하기 위해 방문하는 노동자들. 그분들은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이런 대기업 마크를 달고 있지만, 정작 대기업에 소속 노동자가 아닙니다. 외주업체가 재하도급을 주는 다단계 하도급이에요. 이용자는 속고 있어요. 대기업 업체에 기술 서비스를 받는 게 아니라 이름도 모르는 다단계 하도급의 개인 사업주에게 서비스를 받고 있으니까요. 처음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SK브로드밴드에 교섭을 요청했더니 자기네 회사 직원이 아니래요. 외주 업체도 자기네 회사 직원이 아니라면서 재하도급 업체에 가서 이야기 하라고 해요.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기사들의 처우를 책임지고 싶지 않은 거고, 그래서 그들에게 인터넷 설치 기사분들은 유령 같은 존재였던 거죠.

이도훈

개인 사업자라고 하는 것이 노동자를 사장으로 둔갑시키는 거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김진억

그렇죠. "건 바이 건"이라고 하는데, 설치 건수가 몇 개 되냐에 따라 실적급이 달라지는데 그런 식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학습지 교사들도 학습지 회사하고 위탁계약을 맺어요. 그분들은 개인 사업자죠. 자동차 판매 대리점을 보면 현대자동차 직영 대리점이 있고 외주를 준 대리점이 있어요. 외주를 준 대리점의 자동차 딜러들은 개인 사업자예요.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인터넷 설치 기사분들도 그중에 하나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이도훈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와 관련된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Play on]은 지금의 제목이 있기 이전에 “우리는 SK브로드밴드 직원이 아닙니다”, “마르지 않는 금광” 등을 제목으로 고려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변규리

“우리는 SK브로드밴드 직원이 아닙니다”로 제목을 지었을 때는 영화 속에 출연하는 분들의 노동조건과 그들이 하청 노동자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목이 재미없고 영화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시간이 지나서 이 다큐멘터리가 라디오의 형식을 띠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방송할 때 온에어(On Air)가 딱 켜지잖아요. 방송 중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건데, 요즘에는 스트리밍으로 노래를 듣거나 팟캐스트를 들을 때 플레이(play)가 있고 그 아래에 온(on)이라고 쓰여 있어요. 지금 제목은 말 그대로 “플레이를 온 하라”는 이유가 하나 있어요. 그리고 팟캐스트 방송을 하면서 “오늘 금천광명지부 22회 방송이 있었습니다. 다 함께 들어주세요. 플레이온”이라는 식으로 소개 제목을 붙였는데, 거기서 따온 거기도 해요. 영어로 플레이온은 계속한다는 뜻도 있어요. 스포츠 경기에서 서로 경기를 하다가 한쪽이 반칙을 해도 그 반칙이 상대편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할 때 경기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 진행할 때도 그 말을 쓴다고 해요.

이도훈

투쟁은 계속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네요.. 이 영화의 서사가 투쟁 현장을 다루기도 하지만 투쟁 이후의 모습도 다룬다는 점에서 제목과 구조적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과 관련해 질문을 드리자면, 인터넷 설치 기사분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분들이 노동 현장이나 투쟁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가까이서 보셨을 것 같아요. 실제로 어떤 부분을 가장 힘들어하시던가요?

변규리

가장 큰 건 고객들에게 받는 스트레스인 것 같아요. 그분들은 기술을 다루기도 하지만 감정노동도 하기 때문에 자신을 기술서비스노동자라고 불러요. 영화에서 한 노동자분이 별점을 나쁘게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걸로 끝이 아니라 다음날 센터에 가면 사장이 전 직원들 앞에서 망신을 줘요. 고객과 문제가 생기면 그게 점수로 측정되어서 사장에게 모욕을 당하는 식으로 이중고를 겪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리고 남훈 씨가 전주를 오르는데 그냥 못 올라가고 점프해서 올라가는 장면이 있어요. 전봇대가 세워져 있는 구조가 지역마다 다르고 동네마다 달라서 어느 지역에 배정받느냐에 따라 노동 환경 자체가 달라져요. 전봇대를 오를 때 밟고 올라가는 것을 발못이라고 하는데, 이 발못이 부러져 있는 곳도 있고 잘못 밟으면 뚝 끊기는 곳도 있어요. 이진환 씨 같은 경우에는 발못을 항상 들고 다녔고 남훈 씨는 발못이 없는 전봇대를 점프해서 올라가기도 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분들은 위험수당을 받아야 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또 이분들이 우리 삶에 정보를 연결해주면서 공익성을 담보해주고 있으므로 그에 걸맞은 인정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도훈

지금 감독님께서 감정노동과 산재를 중심으로 인터넷 설치 기사분들이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말씀해주셨어요. 국장님이 보시기에 기사분들이 현장에서 겪는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진억

그 두 가지가 가장 큰 것 같아요. 장시간 노동 그것도 주당 60~70시간에 가깝게 일하고 또 맞벌이하는 부부들이 많잖아요. 그분들이 퇴근 후에 서비스를 신청하면 설치 기사 분들은 여섯시 이후에 가야 해요. 어떤 때는 7시~9시에 일하기도 하죠. 토요일에 특히 일이 많아요. 이사 가기도 하고, 명절 때도 TV 안 나온다고 인터넷 안 된다고 서비스 신청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추석이나 설날 같은 연휴 기간에도 명절 당일 하루만 쉬어요. 인터넷 설치 기사분들의 바람이 휴일이 있는 삶이에요. 저녁에 가족들하고 밥 먹고 싶다, 휴일에 아이들하고 야유회 가고 싶다는 게 그들의 큰바람이에요. 그리고 거의 건 바이 건으로 일하고 그게 실적으로 연결되고 수수료가 낮다보니 그만큼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란 말이죠. 그래서 인터넷 설치 기사분들이 휴식이 있는 삶과 생활임금보장에 대한 열의와 열망이 컸고 그걸 해결할 방법을 찾다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된 거죠.

이도훈

국장님이 말씀해주신 저녁이 있는 삶과 관련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장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노동자분이 버스 타고 가다가 고객의 전화를 받는 장면이 있어요.

변규리

버스 타고 가는 장면을 찍던 중에 실제로 고객에게 전화가 온 경우가 있었어요. 인터넷 설치 기사분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명함에 개인 번호가 적혀 있었다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녁 8시 이후에도 설치해줄 수 있냐는 연락이 오고 거기에 잘 응대해주지 않으면 불만이 접수되니까, 그런 상황이 되면 친절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해요. 파업하고 노동조합이 교섭하고 난 이후에는 명함에 개인 번호를 지웠다고 하더라고요.

관객 1

영화 뜻 깊게 잘 봤습니다. 국장님과 감독님께 각각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비영리단체에서 전업 활동가로 있는데, 노동운동 현장이나 다른 현장에 가서 연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렇듯이 파업이 일상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국장님께는 어떻게 하면 일상에서 노동운동이나 노조 활동의 지향점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개개인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감독님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노동자분들과 현장에 함께 있으면서 촬영을 한 것 같은데 그 시간 동안 감독님은 자신의 역할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을 노동운동 활동가로 바라보셨는지 아니면 현장을 기록하는 관찰자나 기록자로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진억

오랜 시간 동안 노동조합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저는 작업장과 함께 일상의 삶에 주목하고 있어요. 조합원들의 일상적인 삶과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 작업장에서 머리띠를 묶고 투쟁을 하고 임금인상 노동조건개선을 외치죠. 그런데 정작 일상적인 삶에서 작업장 투쟁을 할 때처럼 그런 의미의 연대를 요구하거나 뭔가 이 사회가 한 걸음 더 진전하는데 기여할 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느냐. 민주노총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왔지만 우리 조합원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일상에서는 자본에 종속된 삶을 사는 거 아닌가? 다른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 우리가 노동조합의 지침을 따르는 조합원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연대를 하고 있는가? 그 부분에서는 늘 의문이 들어요. 조합원들도 그렇고 시민들도 그렇고 일상적인 삶에서 주변의 따듯한 시선과 연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조합원들이 투쟁할 때 여러 시민들이 연대해주셔요. 그런 연대를 우리 조합원들도 일상적으로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가장 안 되는 것이 불매운동이거든요. 그냥 일상에서 그런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하기에는 너무 높은 수위의 행동과 실천인 거죠. 저는 그런 범위까지 우리 조합원들의 일상적인 삶이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변규리

[Play on]을 촬영할 당시에는 저 자신을 미디어 활동가라고 생각했어요. SK브로드밴드 노동자분들 중에도 파업 현장을 기록 중인 분들이 있었어요. 그분들과 함께 부당노동행위나 인권침해가 벌어지는 현장을 기록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금천광명지회의 활동을 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편집하면서 제 자신을 조금 다르게 바라봤어요. 미디어활동가의 정체성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편집하는 동안 이 영화는 사람들이 다소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노동자 투쟁을 다루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친근하면서도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게 가장 큰 숙제였어요. 그 당시에는 연출가인 동시에 작가로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관객 2

영화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섯 분 모두 남성인데, 남성 노동조합원들은 어떻게 말하고, 투쟁할 때의 마음가짐은 어떻고, 동지들과 있을 때 어떻게 수다 떨고, 가족과 있을 때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 등등이 궁금했어요. 그리고 남성 노동조합원들에 관한 선입견도 좀 있었어요. 영화를 보고 나니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그분들의 모습이 좀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투쟁이 길어지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귀엽고 가볍게 넘기는 점들이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받은 이런 느낌들이 다섯 분의 남다른 우정 때문인지 아니면 그분들이 팟캐스트를 녹음하면서 잡담을 나누고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궁금합니다.

변규리

인디다큐페스티발에 상영작으로 선정되고 나서 프로그래머 중 한 분에게 남성 노동자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인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는 심사평을 들었어요. 그 심사평을 듣고 기뻤고 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에요. 제 스스로가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여성 활동가이다 보니 촬영할 때 성차별적인 경험을 하지 않을까, 남성 노동자들과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 조금은 불편하지 않을까, 등등의 고민을 하면서 촬영 현장을 누볐던 것 같아요. 물론 방송 통신설비 일을 하시는 분 중에도 여성 조합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남성 조합원이 월등히 많죠. 금천광명지회 분들에게 그런 부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여성으로서 불편했던 걸 이야기할 때 바로 사과를 하셨어요. 평소 대화를 나누거나 인간적인 관계 맺음을 할 때 불편함은 없었어요. 물론 이분들이 페미니스트이거나 여성주의자는 아니지만 민주적인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학습이 되어 있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그런 부분들에 대해 많이 준비하신 것 같아요.

관객 3

마지막 장면을 선택한 기준이 궁금합니다. 극영화와는 다르게 촬영분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마지막 장면을 선택하는 게 힘들었을 것 같아요.

변규리

라디오 형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겠다고 결정한 이후로 라디오로 시작해서 라디오로 끝나는 구성을 생각했어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동자분들에게 투쟁 현장은 SK브로드밴드 본사일 수도 있고, 길거리일 수도 있고, 그 어떤 곳일 수도 있어요. 이들에게 또 다른 투쟁 현장은 라디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2주에 한 번씩 구로FM을 찾아와서 평소 핸드폰에 적어둔 대본을 읽고, 수다를 떨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이들에게 또 다른 투쟁의 현장이 아니었을까. 이들의 투쟁이 어떤 부분에서는 승리하고 쟁취한 부분이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아직 더 나아가야 할 부분들이 있지만, 그들의 투쟁이 갖는 힘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다들 호탕하게 웃으면서 라디오 녹음을 하다가 실패한 장면이 있었고 그걸 마지막 장면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도훈

다른 노동 다큐멘터리와 달리 [Play on]은 파업 이후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다룬 것 같아요. 복귀투쟁을 할 것인지 생계투쟁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그 부분부터가 중요하다고 봤어요.

김진억

장기투쟁이 4개월 차로 접어들면서 생계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마지막 승부수가 고공농성 투쟁이었어요. 사용자 측(원청)도 해결을 봐야한다고 생각을 해서 집중 교섭 국면이 열렸는데 그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집중 교섭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고 생계문제 때문에 조합원들이 이탈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복귀투쟁을 선택한 거죠. 고공농성을 하는 동지들과 그것을 사수하는 동지들만 남고 나머지는 다 복귀를 해서 급여를 발생시키면서 투쟁을 하자. 교섭을 해서 진전이 없으면 다시 나오자. 현장 복귀가 외주 업체와의 관계 속에서 어렵고 힘들다고 판단한 지회도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구로금천지회였고, 50여 개 지회 중에 유일한 경우였어요. 나머지는 사수들을 제외하고는 복귀를 했는데, 구로금천지회만 복귀투쟁에서 제외되었던 거죠. 그 부분까지 강요할 수는 없으니 주체적으로 판단하라고 해서 복귀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투쟁을 진행한 거죠.

변규리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복귀투쟁이냐 생계투쟁이냐 놓고 논의를 할 때 지회장님이 우신 적도 있어요. 지회장님은 다른 지회만큼 열심히, 그리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예요. 본인이 지회장 역할을 맡고 있으니 다른 조합원들을 설득해서 다 함께 투쟁에 합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었는데, 복귀하게 되면 뻔히 예상되는 비조합원들과의 갈등에 고개를 숙여야하는 상황이 올까봐 부담이 크셨어요. 그리고 당장 돈이 없어서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당장 일주일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현금을 받아서 월세를 내야하는 상황이 되니까 고민을 하신 거죠. 결국에는 다 같이 생계투쟁을 택했어요. 수문장 아르바이트를 교대식으로 하는 장면이 있는데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어요. 본인들도 그때 그 아르바이트를 했던 게 가장 웃긴다면서 가장 추억에 남는다고 해요. 특히 사극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셨어요. 보조출연이 친구들이랑 어울리며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아르바이트였는데 “친구 대환영”이라는 문구를 보고 다 같이 면접 보러 가고 그러셨어요.

이도훈

그럼 마지막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이나 관객분들께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릴게요.

김진억

노동자를 나타내는 키워드 중 하나가 두려움이에요. <송곳>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죠. 내가 존중을 받기 위해선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줘야 한다. 개인에게는 힘이 없잖아요. 집단으로 단결해서 사용자를 두렵게 만들어서 더 이상 개인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개인을 존중하게 만드는 게 노동조합이거든요.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조합원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두려움이에요. 노동조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모두가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건 알아요. 근데 막상 하려면 두려운 거죠. 뭔가 뚜렷한 희망과 전망이 없으면 안 해요. 그런 고민 끝에 노동조합을 했는데 6개월 동안 생계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요. 그게 노동조합의 일반적인 모습이에요. 앞서 영웅적인 투쟁을 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조합원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그려줘서 변규리 감독님에게 고맙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실 이 영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노동자는 특별한 경우에요. 일반적인 조합원들은 파업 끝나고 술 먹으면서 무용담도 얘기하고 아직 남아 있는 불만도 이야기하고 그러죠. 그런 평범한 노동자분들이 변규리 감독님을 만나서 다른 방식으로 자기 이야기와 고민을 펼쳐 놓은 것 같아요. 제가 조합원의 삶을 중요시한다고 했잖아요. 그들의 삶이 투쟁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도 펼쳐지길 바란다고. 아마도 이 작품이 그런 것들의 한 면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변규리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한 분도 빠지지 않고 남아서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게 하나 있는데, 제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가 연분홍치마라는 곳입니다. 지금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어요.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활동가분도 오늘 자리를 함께 해주셨어요. 여러분들 입장하실 때 연분홍치마 CMS 용지를 나눠드렸는데 가능하시다면 인권운동 다큐멘터리를 함께 제작하는 제작자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늦게까지 자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녹취 및 정리 : 이지혜,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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