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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주와 매매의 사슬 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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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DOF 발견과 주목’ 8월 프로그램_<호스트 네이션> GV

‘SIDOF 발견과 주목’ 8월 프로그램_<호스트 네이션> GV

일시
17.08.22(화)
장소
인디스페이스 ( IndieSpace )
진행
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참석
이고운(<호스트 네이션> 연출), 김엘리(성공회대 외래교수)
토크
<호스트 네이션>은 필리핀으로부터 한국 미군기지 인근의 클럽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통해 글로벌 성 산업의 구조와 네트워크를 관찰자적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고질적인 가난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한국행을 선택한 필리핀 여성, 그들을 한국으로 이어주는 매니저와 브로커, 그리고 그 여성들을 고용한 클럽 업주들이 있다. 각기 다른 사연과 이해관계들은 미국이 오랜 시간 동안 전 지구적으로 강화해나가고 있는 군사문화와 그것이 암암리에 양성하고 있는 성 산업 내에서 행위자 또는 공모자로 만난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하 세계의 네트워크를 참여 관찰한 점에서 이 영화는 세계의 어두운 면을 가시화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 영화는 미군 기지촌의 쇠락해가는 모습을 을씨년스럽게 담아낸 시적 장면을 연출한 영화적 성과와 함께 등장인물 개개인의 사연에 감정이입 하는 연출자의 성숙한 태도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도훈

2017년 ‘SIDOF 발견과 주목’의 세 번째 프로그램은 이고운 감독님이 연출한 <호스트 네이션>이었습니다. 이고운 감독님과 김엘리 교수님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 시작하겠습니다.

이고운

안녕하세요, <호스트 네이션> 연출한 이고운입니다. 평일 늦은 시간에 지루한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엘리

안녕하세요, 김엘리입니다. 아주 흥미롭게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오늘 대화를 통해서 많은 생각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이도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저널리즘적인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영화 속에 나오는 브로커 정, 욜리, 파파 정 같은 인물들이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이 영화가 시적인 장면 연출을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첫 질문으로 필리핀 마닐라로 가게 된 배경을 묻고 싶습니다.

이고운

2013년에 자료 조사를 시작했어요. 당시 경기 북부에 있던 미군 부대들이 2016년까지 평택으로 이사할 예정이었어요. 미군 기지가 이전하기 전에 그곳의 풍경을 에세이 다큐멘터리식으로 기록하고 싶어서 동두천과 의정부를 돌아다녔어요. 대학 시절 동두천 기지촌에서 활동을 잠시 한 적이 있어요. 그 시절과 비교해봤을 때, 2013년 기지촌은 미군은 그대로 있지만, 한국 여성들이 일하던 자리를 필리핀 여성들로 채워지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 변화와 함께 한국인의 역할은 어떻게 변화했는가와 관련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기지촌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업주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이 걸린 끝에 파파 정이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자기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필리핀 여성들을 인신매매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니까 궁금하면 필리핀에 가서 확인해보라고 말했어요. 그때 덥석 물었죠. 가면 소개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11월 즈음인데 준비를 해서 이듬해 1월에 필리핀으로 갔어요.

이도훈

파파 정이 첫 단추를 채워준 거네요. 필리핀에서 브로커들을 만나서 촬영 과정을 설명할 때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고운

파파 정이 소개를 해줘서 그런지 브로커 정 씨 눈에는 제가 해를 끼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르포 다큐처럼 악행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출연하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본인의 의지대로 담겠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미군이 주둔하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이 산업과 그곳에 종사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다고 설득했어요. 필리핀 매니저로 나오는 마담 욜리는 의외로 페미니스트예요. 미군들로 인해서 여성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는지를 다루는 페미니즘 영화가 될 거라고 말했어요. 처음 만날 날 제게 필리핀 싸구려 위스키를 먹이면서 이것저것 묻더라고요.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허락을 받아냈어요. 다음날부터 바로 촬영할 수 있었어요. p>

이도훈

김엘리 교수님께서는 이 영화에 대한 리뷰에서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의 객실 풍경이 나오는 오프닝에서 묘한 떨림을 받았다는 평을 써주셨어요.

김엘리

오프닝에서 꽃과 나뭇가지가 떨리는 걸 보면서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기지촌 그리고 기지촌 여성에 관한 문제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되더라도 주로 피해자의 인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이고운 감독의 미군 기지촌 이야기는 피해자 담론으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미군 기지를 둘러싼) 거대한 성 산업 구조를 드러내고 있어요. 필리핀의 매니저와 브로커들이 필리핀 여성들을 어떻게 한국으로 보내는지, 필리핀 여성들은 왜 한국으로 가려고 하는지, 그리고 한국의 클럽 업주들은 어떻게 필리핀 여성을 관리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어요. 이 외에도 보이지 않는 행위자들, 예를 들면 한국과 미국 그리고 두 나라의 동맹을 통해서 지탱되고 있는 글로벌한 군사 문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필리핀 여성들의 행위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국에 온 필리핀 여성 중에는 마리아처럼 돈을 벌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조이처럼 임금 착취를 당해서 업주를 고소하는 경우도 있어요.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겪게 되는 다양한 경우를 비추면서 그 여성들이 단순 피해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사람들로 그려나갔다는 점이 제게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도훈

교수님의 지적처럼 이 영화는 미군 기지촌을 둘러싼 글로벌 성 산업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역사적 배경과 맥락에 대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한국의 미군기지 내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한국인 중심에서 필리핀인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김엘리

1990년대부터 러시아 여성을 시작으로 외국인 여성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2003년 도에 러시아 여성들에게 비자 발급이 중단되면서 그들의 빈 자리를 필리핀 여성들이 대체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아시아 여성들이 거대한 이주의 흐름을 만들어나가게 됩니다. 이 여성들이 이주하는 경로를 살펴보면, 그들이 한국 여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해왔던 가사 노동과 성적 서비스를 대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한국으로 와서 결혼하거나 미군기지 내에서 성 산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죠.

이도훈

브로커 정 씨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러시아를 거쳐 필리핀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는 어떤 계기로 성 산업이라는 지하 세계에 뛰어들게 되었나요.

이고운

무슨 공무원이었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그런 게 있어”라고만 답하셨어요. 하던 일이 잘 안되었을 때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친한 형이 일을 도와 달라고 해서 이 산업에 뛰어든 것 같아요. 소련이 붕괴된 이후 1990년대 초반은 러시아 여성들이 불법적으로건 합법적으로건 세계 각지로 나가던 시기였어요. 당시 정 씨는 한국에서 극장 형태로 된 조그만 식당에서 쇼걸들을 수입하는 일을 알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러시아에 들어갔다고 해요. 그러면서 미군 영내 클럽에 러시아 여성 댄서들을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중간에 무역업으로 업종을 전환했다가 망하고 난 다음에 다시 러시아 여성들을 수입하는 일을 하다가 필리핀으로 넘어왔다고 해요. 파파 정 같은 경우에도 20살에 클럽 보디가드로 일을 시작해서 클럽 업주가 되었고,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루지라는 친구도 군산 클럽에서 성 노동자로 일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서 여성들을 모집하는 스카우트가 되었어요. 이 산업에는 주로 학력, 배경,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데 그들 대부분이 젊은 시절에 일을 시작해서 다른 것을 하다가도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이도훈

그 일이라는 게 일종의 블랙홀과 같은 거였네요. 브로커 정 씨와 동업자 관계에 있는 욜리 씨도 흥미로운 캐릭터였어요. 영화를 보다 보면 꽤 재력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 그녀가 하는 사업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이고운

욜리가 처음에 했던 사업은 권투 선수들을 육성하는 거였어요. 필리핀에서 가난한 남성들은 권투나 격투기로 성공하고, 여성들은 연예 산업으로 성공합니다. 그런 직업이 전통적으로 필리핀 슬럼가에 있었던 것 같아요. 욜리는 거리에서 자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밥 먹이고 훈련을 시킨 다음에 게임에 내보내서 수익을 챙겼어요. 처음 여자들을 외국으로 송출하기 시작한 건 일본 클럽 쪽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일본 내에서 이 산업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면서 정부 차원에서 연예인 비자 발급을 금지하게 돼요. 욜리는 일본으로 가는 루트가 끊기고 나자 한국 업소들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게 된 건데, 이런 사업이 위험도가 매우 커요. 센터들이라고 해서 제3국의 공항에 누구를 배치해야 하는데 그들에게 돈도 많이 떼이고 사고도 자주 나서 사업의 기복이 좀 심하다고 볼 수 있어요.

이도훈

앞서 감독님께서 욜리는 의외로 페미니스트 성향이 있다고 했는데, 김엘리 교수님은 욜리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셨나요?

김엘리

욜리가 등장하는 배경에 성모마리아가 자주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욜리가 자신을 의미화하는 방식 그리고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은 그녀가 권투 선수나 여성들을 키운다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잘 드러나요. 그래서 그런지 욜리는 모성애를 가진 존재로 보였어요. 또 그녀가 모든 걸 터놓고 이야기한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우리는 성매매를 하려는 게 아니고 가수를 키우는 거다. 그럼 누구 탓이냐. 그건 프로모터를 잘못 만나고 브로커를 잘못 만난 거다.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데 그에 대한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이고운

저는 욜리가 하는 이야기를 다 믿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다 의심했던 것도 아니에요. 파파 정도 그렇고 다른 클럽 업주들의 경우에도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고용하고 관리하면서 비슷한 논리로 주장을 해요. 가난에서 탈출하는 건 너의 몫이고, 운이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 자본이 없으니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성공적인 사례를 끊임없이 들려주고는 나는 너를 도와준다, 선택은 너의 몫이라고 말해버리죠. 과거의 가해자들이 여성들을 감금하고 학대했다면 지금의 가해자들은 유사 가족의 구조를 만들어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돈을 벌고 있어요. 영리한 가해자인 거죠.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보면 거리의 고아들을 모아서 앵벌이를 시키는 할아버지 있잖아요, 그런 사람 같아요.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잘 알고 있고 그 사람들을 장악해서 자기는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죠.

관객 1

영화 잘 봤습니다. 영화를 보니 에이전시가 가져가는 돈도 많은 것 같던데, 한국 미군기지 주변의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돈을 벌어 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필리핀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에 조이 씨 같은 분이 인권 침해가 있을 거라는 걸 감수하고서도 한국에 올 수밖에 없는 딜레마를 겪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고운

두 여성(마리아와 조이)의 각기 다른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 후반부의 뒷이야기를 하자면, 작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지금과는 다른 버전의 엔딩을 보셨어요. 마리아는 고향에 돌아가서 빈민가를 탈출하고 평범한 주택가에 예쁜 집을 샀어요. 대략 2,000만 원 정도 벌어서 갔던 거로 알고 있어요. 물론 그 돈만 가지고 집을 샀던 건 아니고 대출을 받았어요. 마리아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였어요. 조이는 일하는 동안 업소로부터 학대를 받았어요. 그녀가 일했던 곳은 CCTV로 여성들을 감시하는 곳이었어요. 그곳에서는 업주가 벌금이라는 명목으로 월급 일부를 떼어가는 일이 많아서 돈을 모을 수 없었어요. 조이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돈벌이도 못 했는데 결과적으로 재판에서 지고 말았어요.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잖아요. 그 후 민사소송을 진행하면서 G1 비자를 받아서 공장에 일하게 되었는데, 재판이 끝나고 비자가 만료된 후에는 어딘가로 잠적을 해버렸어요. 지금 저랑 연락이 되지 않아요. 평택에 있는 어느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보통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으로 오는데 준비 과정만 일 년 정도가 걸려요. 그렇게 해서 한국에 와서 이상한 업소라는 걸 알고는 본국으로 돌아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조금 더 버티게 돼요. 한국 경찰들은 그렇게 힘들면 좀 더 일찍 탈출하지 그랬냐는 식으로 말해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필리핀은 전통적인 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이웃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알고 지내요. 한국으로 돈을 벌려고 떠났다는 걸 가족들도 알고 동네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마당에 목돈이 마련되지 않는 한 돌아갈 수 없는 거죠. 많은 필리핀 여성들이 잘못된 업소를 만나서 가혹한 상황을 겪다가 탈출한 다음에 불법으로 공장지대에서 일해요. 어떻게든 만회해서 돌아가려고.

이도훈

마리아와 조이 그 두 사람의 경우를 두고 어느 쪽이 보편적인 경우고 또 어느 쪽이 특수한 경우라고 단정하기 힘든 거 같아요. 여성들의 노동이 착취당하고 그들의 성이 상품화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 그러한 사업을 지탱하게 하는 만드는 가난, 가부장제, 애국심 등이 있다는 거에 주목해야 할 것 같아요.

이고운

이번 버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조이는 아버지 빚 때문에 한국에 오게 된 경우였어요. 태풍을 맞아서 농장과 집이 모두 파괴되었거든요.

김엘리

제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여성의 몸이 상품화된다는 거예요. 보통 서비스를 주는 자가 있고 서비스를 받는 자가 있는데, 아시아 여성은 주로 전자의 몫을 담당하죠. 외국으로 일을 하러 가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도 그 여성들이 한국으로 와서 결혼하고 한국에 일을 하러 오는 거는 이게 상대적으로 다른 이주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에요. 한국 남성들이 외국인 여성들의 이주비용을 지급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남성 중심사회에서 교육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훈련받지 않은 여성들이 돈을 벌 기회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관객 2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다들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살고 있잖아요. 많은 책임이 따르고 또 용기가 필요한 영화를 만드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감독님이 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게 이끌어준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상영 계획도 궁금합니다.

이고운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덜컥 시작했어요. 애초에 조이나 마리아 말고 다른 여성 그룹들을 주인공으로 한 6개월 촬영하다가 그들이 못하겠다고 해서 주인공이 교체되고, 또 업주 중에도 촬영 중간에 더 이상 못 찍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때 독기가 오른 것 같아요. 두고 봐라, 내가 완성하고 만다고 다짐했죠. 질문해주신 관객분은 제게 여성주의적으로 어떤 각오를 했었는지 물어보신 것 같아요. 이 영화를 3~4년 동안 만들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제가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이 회색으로 변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인생을 사는지를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또 서구적인 방법으로 뚜렷한 원인과 결과 속에서 결말을 맺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작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배우기도 했어요. 여성들은 자기 행위의 주체성을 갖고 자기 인생을 선택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개봉과 관련해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한국인들, 그리고 파파 정, 브로커 정이랑 약속한 게 있어요. 한국에서는 극장 상영은 하겠지만 디지털 개봉은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파파 정은 일이 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피해 여성분들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도 있어요. 하반기 정도에 공동체 상영 위주로 갈지 개봉을 하지 여부를 결정할 것 같습니다.

관객 3

영화 속에서 밥을 함께 먹는 장면이 좋았어요. 여러 버전이 있는 것 같은데 모든 버전에서 밥 먹는 장면이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이고운

첫 번째 버전에는 없었어요. 평소 마이클 무어 식으로 감독이 영화 속에서 행위자로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제 목소리 나오는 것도 최소화하고 싶기도 했고요. 마리아가 돈을 세고 있는 동안 제가 그녀에게 오늘 손님이 몇 명이나 있었냐고 물어보는 그 장면은, 최초 편집 과정에서 불편해 보여서 뺐어요. 그 장면은 마리아와 함께 숙소에서 같이 자고 생활하면서 그녀와 편안한 관계를 맺은 다음에야 찍을 수 있던 거였어요. 그런데 편집하면서 평소에 제가 알지 못했던 마리아의 모습이 보였어요. 마리아는 손으로 밥을 먹잖아요, 저는 포크로 밥을 먹는 데 그 부분에서 그녀와 내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친구의 심정으로 무언가를 공감하면서도 쉽게 넘지 못하는 벽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한국인이고 그 친구는 필리핀인이라는 그 대비가 묘한 느낌을 주는 게 좋았어요. 결국, 그 장면을 사용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후 버전에는 계속 포함하고 있어요.

관객 4

후반부에 미군 보고서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 미군이 자기네 병사들의 클럽 출입을 제한한다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면서 미국과 한국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잖아요. 그리고 감독님은 그 문장을 강조하셨고. 왜 그 부분을 강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피해 여성들의 행위의 주체성에 대해서 더 듣고 싶습니다. 사회 구조나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의해서 여성들이 떠밀려 왔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고운

우리의 관계가 특별하다고 나오는 그 공문은 미군이 클럽 업소에 보내는 공문이었어요. 오래전부터 미군과 클럽 업주들은 한미친선협회 같은 걸 만들었어요. 업주들을 초청해서 고충을 듣고 그걸 미군이 컨트롤 하는 식이었죠. 과거부터 미군과 업주들은 친밀한 관계였던 거죠. 그러면서 미군은 본인들이 선한 사람인 것처럼 굴고 업주들에게만 비난을 돌려요. 왜 인신매매하냐고 비난하지만, 그것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또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이 미군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특별한 관계라는 표현이 들어간 그 부분을 강조했어요.

이도훈

일종의 자가당착인 것 같아요. 미군이 스스로 필리핀 여성들을 인신매매하는 데 공모자로 참여했음을 밝혀버린 게 아닐까 싶네요.

이고운

미군에게도 여러 차례 취재 협조를 부탁했어요. 필리핀 여성을 고용하고 있는 업소에 미군 출입을 제한한 것은 잘한 일이지 않냐, 그리고 부대 안에서 어떤 종류의 여가 시설이 있는지 촬영해보자고 공보관에게 요청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안 됐죠. 영화 속에서 미군과 클럽들과의 연관성을 가시화할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 바로 그 공문 한 장이었던 것 같아요.

이도훈

두 번째 질문으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부탁하셨어요.

이고운

마리아의 경우를 보면, 이 산업에 뛰어든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거고, 어느 정도의 위험이 있지만, 본인 스스로가 그 위험을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어요. 자본이 없는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잖아요. 단지 그런 선택을 한 것만이 마리아의 여성적 주체성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봐요. 그녀는 한국의 미군기지 내의 클럽에서 생존하기 위해 매일 작은 전략들을 구사해요. 업주의 말을 잘 들을까, 여기를 빠져나가서 공장에 갈까, 돈 천만 원을 모아야지 등등. 마리아는 분명 그런 행위의 주체로서 여러 가지 활동을 했어요. 단순히 끌려가서 갇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라는 거죠.

김엘리

성폭력이나 성매매에서나 우리가 생각하는 피해자 상이라는 게 있는데, 사실은 그런 전형적인 모습과 다른 사례들이 많아요. 파파 정과 같은 사람들이 인신매매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들이 필리핀 여성들을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그리고 계약서에도 없는 상태에서 일을 시킨 것이 전적으로 그 여성들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 없다는 거죠. 예기치 못한 여러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 그 여성들은 최소한 협상과 조율을 하면서 그리고 그 상황을 타개해나가면서 본인의 이익을 확장할 수 있었어요. 자기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행위의 주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 5

마지막 공문에 보면 미군과 한국 업주들이 우호적인 관계였다가 미군이 최근에 통제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 같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고운

2013년에 미국에서 청문회가 열렸어요. 군대 내에서 미군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성폭행 사례들을 고발하는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미군 내의 성 군기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어요. 그 청문회를 계기로 전 세계 각지의 미군기지 내의 성 문제를 단속하기 시작했어요. 마침 군산 미군 공군기지의 사령관이 여성이었어요. 영화 속에서 공문을 읽는 여성의 목소리는 그분의 목소리를 재현한 겁니다. 국제적으로 인신매매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면서 미군이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또 당시 군산 미군 공군기지에 여성이 사령관으로 왔으니까 다른 지역에서보다도 먼저 미군기지 클럽들을 통제했던 것 같아요.

이도훈

공문을 보낸 것이 여성이었다는 점은 몰랐네요. 2000년대 이후 국내 여성주의 진영에서 미군 내에서의 성매매와 인신매매 등에 관해서 담론이 형성된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엘리

2003년에 러시아 여성들이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그 실태가 알려졌어요. 2002년도에 FOX TV에서 한국에 촬영을 왔을 때, 마침 두레방 활동가들과 성매매를 반대하는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었어요. 그들 중 한 명이 기지촌 중심으로 인신매매가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게 FOX TV를 통해서 방영되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미국 사회가 뒤집어지고, 미군은 자신의 도덕성에 흠이 가 버렸죠. 한국은 인신매매 국가로 등급이 하락합니다. 정부도 그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곧바로 러시아 여성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주던 것을 중단시켜요. 미국은 무관용 정책이라고 해서 9·11 이후에 인신매매 근절을 선언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인신매매와 관련된 클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조치를 취하죠. 그런데 러시아 여성들이 떠난 그 자리를 필리핀 여성들이 대체하게 된 겁니다.

이도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시간 관계상 관객과의 대화는 이즈음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고운

<호스트 네이션>과 관련해서 오랜 시간 동안 리서치를 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 같아요. 한 편만 하고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있어서 2차 세계 대전부터 현재까지 미군 해외 기지를 중심으로 한 성매매의 변화를 다룬 영화를 시작했고, 현재 촬영 중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자리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엘리

이 영화를 많은 사람이 봤으면 합니다. 과연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안전한 삶과 안보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되짚어 보셨으면 합니다. 이 영화가 글로벌 성 산업의 구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모두 이 일에 연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의 위치는 어디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 녹취 및 정리 : 이지혜,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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