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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DOF 발견과 주목’ 9월 프로그램 <고요수업>,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 <있는 존재> GV

‘SIDOF 발견과 주목’ 9월 프로그램 <고요수업>,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 <있는 존재> GV

일시
17.09.19(화)
장소
인디스페이스 ( IndieSpace )
진행
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참석
정현정(<어쩌면 더 아름다웠을> 연출), 박시우(<있는 존재> 연출), 주현숙(인디다큐페스티발2017 프로그래머)
토크

이도훈

안녕하세요,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이도훈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정현정, 박시우 감독님 그리고 인디다큐페스티발2017 프로그래머로 참여하셨던 주현숙 감독님이 참석해주셨습니다. 세 분 모두 간단하게 자기소개와 인사 부탁드립니다.

정현정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이라는 작품을 만든 정현정입니다.

박시우

<있는 존재> 만든 박시우입니다.

주현숙

인디다큐페스티발2017 프로그래머를 했었던 주현숙입니다.

이도훈

오늘 상영한 세 편의 단편은 각기 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주제로 묶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들은 어떤 이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명되어야 할 이름들과 호명되어서는 안 될 이름들, 그리고 사라져가는 이름들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 같은 경우에는 한 공간과 그곳의 한 인물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요, 이 작품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현정

미디액트의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을 수강할 당시 실습 장소를 찾던 중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수료 작품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지만, 원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또 촬영 당시 세탁소가 폐점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있어서 빨리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도훈

촬영 장소가 종로구 익선동인데, 촬영 전에 그곳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정현정

원래 실습 장소는 안국동이었어요. 그 근처에서 어디로 갈까 생각하면서 인터넷으로 자료 조사를 하던 중에 익선동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곳에 한옥마을이 있다는 걸 알고 막연히 그런 공간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사전에 자료도 찾아보고 TV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도 찾아봤는데, 직접 방문한 건 촬영 날이 처음이었어요.

이도훈

영화 속에 나오는 세탁소는 어떻게 섭외하신 건가요? 폐업 일주일 전에 찾아가게 된 것도 기묘한 인연이네요.

정현정

일단 촬영 전에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익선동을 다룬 부분을 찾아봤어요. 거기서 세탁소 아저씨가 꽤 비중 있게 나오셨는데, 되게 좋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오래된 세탁소를 운영하고 계신 것에 대해서 뭔가 애틋함을 느꼈는데, 찾아갔을 때 폐점 안내문이 붙어 있어서 그것에 대해 여쭤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왔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친절하게 설명을 잘해주셨어요. 그리고 촬영을 해도 되냐고 하니 또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덕분에 정말 감사하게도 촬영할 수 있었죠. 동네 분들도 촬영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셨고.

이도훈

박시우 감독님이 연출한 <있는 존재>는 FTM 트랜스젠더라는 명확한 주제와 소재가 있습니다. 영화 속 주요 인물인 김도현 씨는 어떻게 만난 사이인지 궁금합니다.

박시우

친구이자 제가 만든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김도현 씨를 처음 만난 건 2014년도에 있었던 여성주의 학회였습니다. 그 이후로 친하게 지내다가 이 친구와 같이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5년도에 그 이야기를 처음 꺼냈어요. 그때 친구가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게으른 탓에 계속 미뤄뒀다가 학교 다큐멘터리 워크숍 수업을 들으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어요. 촬영 기간은 한 3개월 정도 되는데, 서로 만나서 알고 지낸 거는 2~3년 넘은 것 같아요.

이도훈

영화를 보면 두 명의 연출자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출을 총괄한 것은 박시우 감독님이라면, 내레이션을 직접 쓰고 그것을 녹음한 김도현 씨가 이 영화의 또 다른 연출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시우

제 작품을 보신 분 중에 주인공이 연출자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이 많아요. 제가 의도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김도현 씨 본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기를 원했어요. 물론 연출은 제가 다 담당했어요. 내레이션 같은 경우에도 결정은 제가 했던 건데, 실제 영화 속의 내레이션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 새로 쓴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예전에 본인의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활용한 겁니다. 처음에는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면서 썼던 편지를 내레이션으로 쓰려고 했는데, 녹음 당일에 김도현 씨가 일 년 전에 쓴 글이라면서 가지고 왔더라고요. 그게 또 영화랑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개 다 녹음해본 다음에 최종적으로 영화에서 보신 내레이션으로 결정했어요.

이도훈

주현숙 감독님께서는 오늘 상영회를 위해 써주신 글에서 존 버거의 관점을 빌어 평등이라는 키워드로 세 편의 영화가 저마다 담고 있는 의미들을 풀어주셨어요. 감독님이 말씀하신 평등이란 좁은 의미에서는 사회적 배제와 차별과 연관이 있지만,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존재론적 평등에 관한 것이었죠.

주현숙

우리에게는 늘 의지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존 버거의 글들이 저한테는 그랬던 것 같아요. 그의 글 중에서 존재에 대한 평등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많이 공감했었어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평등을 이야기할 때면, 항상 기회의 평등을 전제하잖아요. 그런데 기회의 평등을 넘어서는 존재의 평등이라는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더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 세 작품을 인디다큐페스티발 사무국과 함께 묶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공간에 대한 주인이 그리고 일에 대한 주인이 각각 있겠죠. 그런데 그 주인들이 자신이 있던 공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것에 관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만약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존재가 평등한 사회였다면 이 세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형식과 주제가 링크될 때 재미를 느끼잖아요. 그런 면에서 오늘 상영된 세 작품은 ‘거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점과 점이 있어야 거리가 발생하고, 그러면서 선이 생기잖아요. 프레임 안에 있는 거리는 수평, 수직, 대각선이 있죠. 그리고 또 다른 선으로 관통하는 선이 있어요. 이러한 선들을 생각해보면서 거리를 중심으로 이 세 편의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고요수업>은 분할화면으로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만들었고, <있는 존재>는 어떤 상황에서 존재가 발현되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면서 친구, 엄마, 감독님의 관계를 보여주었죠. 그리고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은 영화의 주인공, 감독, 특히 카메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잖아요. 이러한 거리가 각각의 영화의 주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이 세 편의 영화는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자기 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이도훈

말씀해주신 거리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거리는 다의적인 의미가 있는 거겠죠. 점과 점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가 있고, 영화의 프레임 내부에서 발생하는 거리,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에서 발생하는 거리, 그리고 프레임 내부에서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서 발생하는 거리가 그러하겠죠. 그리고 심리적인 거리도 있겠죠. 그럼 감독님들께 여쭤볼게요. 혹시 감독님들께서는 직관적으로 영화를 찍으셨나요, 그렇지 않으면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세워놓고 찍으셨나요?

박시우

어디서부터가 직관이고, 또 어디서부터가 제 생각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굉장히 계획된 일이 되잖아요. 그리고 저는 주인공을 잘 알고 있으니까 더더욱 그렇겠죠. 그 친구를 둘러싼 관계들을 찍는 게 주인공을 나타내는데 좋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찍으려고 한 거고. 김도현 씨 어머니를 인터뷰할 때 도현 씨가 옆에 같이 앉아 있던 거는, 어머니가 혼자 인터뷰하는 걸 부끄러워하셔서 그랬어요. 결과적으로 그게 더 재밌더라고요. 제 지도교수인 홍형숙 감독님께서는 그 인터뷰를 보고 나서 그렇게 흡족해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작업하면서 화면을 통해서 계속 인터뷰이들을 보잖아요. 특히 어머니가 이야기할 때, 주인공의 표정 변화를 체크해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요. 구성이나 관점에서는 재미있는 인터뷰를 연출했다고 생각해요.

이도훈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말로 이루어졌고, 말이 중요한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박시우

FTM(Female-to-male) 트랜스젠더의 삶을 단편 안에 표현하기 쉽지 않잖아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인공이 우스갯소리로 “나 샤워하는 거 발에서 머리까지 틸팅해서 찍을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FTM 트랜스젠더가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포착하기 위해 그의 삶을 24시간 동안 촬영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또 주인공이 친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고요. 그러다 보니 언어로 표현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제 지인 중 한 명이 이 작품을 보고 “내가 항상 듣는 김도현이 하는 말을 스크린에 옮겨 놨는데, 이게 영화가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이도훈

정현정 감독님의 영화는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진 익선동의 풍경을 찍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카메라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현장에서 카메라의 위치 선정이나 움직임은 어떻게 통제하셨는가요?

정현정

기획 단계를 갖고 계획적으로 연출한 게 아니라, 세탁소의 폐점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촬영 기간 자체가 제한되어 있었어요. 촬영부터 해야만 했죠. 우연성과 즉흥밖에 없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정말 즉흥적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도훈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화면 전체에 통일감이 있어 보였어요. 카메라를 고정한 건 익선동이라는 공간의 물리적 특성 때문이라고 봐도 될까요? 익선동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골목이 굉장히 좁아서 카메라를 어딘가에 위치시킨다는 것 자체가 난감할 것 같아요.

정현정

말씀하신 것처럼 골목이 굉장히 좁아서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시선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요. 지나가는 분들도 다니기 힘들고. 세탁소 아저씨와 교류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아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에 대해 나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가까이에서 카메라를 들 수가 없는데, 촬영은 해야겠고. 근데 또 뭘 찍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고. 그래서 카메라를 고정해 두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담아내자는 게 목표였어요. 익선동 골목을 지나다니시는 분들이나 세탁소에 계신 분들이 최대한 카메라를 인식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카메라를 고정해 놓고, 저는 다른 곳에 가 있거나 아니면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그랬어요.

이도훈

한 번 촬영할 때 최대한 얼마나 찍으셨는지.

정현정

물리적으로 촬영 시간을 계산해본 적은 없어요. 촬영 기간 자체가 워낙 짧아서 한번 나가면 최대한 많이 찍고 오려고 했어요. 종일 찍을 때는 세탁소가 문을 여닫을 때까지 찍었고, 그게 안 될 경우에는 반나절 정도를 찍고 온 경우도 있고요.

이도훈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을 보면, 카메라 뒤에서 감독님이 무얼 하고 계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뭔가 기다림의 시간이 영화 속에 녹아 있다고 해야 할까.

주현숙

말씀하신 것 안에 직관적인 게 다 드러나는 것 같아요. <있는 존재>의 경우, 친구가 편지를 가져왔을 때 둘 중에 무얼 고를지 선택한 부분이나, 어머니와의 인터뷰에서 주인공의 리액션을 볼 수 있는 부분이 그렇잖아요. 17분 정도 되는 단편 다큐멘터리가 담아낼 수 있는 현실은 제한적일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FTM 문제에 관련해서 들어가는 이야기들은 스테레오 타입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전, 커밍아웃하기 전, 커밍아웃한 후, 그리고 이어지는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과 그 이후의 삶. 주인공이 속해있는 준거집단의 사람들, 주인공이 원하는 사회가 같이 나와 있던 엄마나 친구를 통해서 드러나고, 주인공의 존재가 인정받고, 반대로 인정받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이미 그 사람은 존재하고 있는 거잖아요. 다만,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이야기 자체는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그걸 일상의 어떤 감각을 통해서 일깨울 것인가가 창작자의 몫이라면 그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고 봐요.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 같은 경우도 카메라를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저 역시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어떤 현장에서 연출자가 자기 자신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은, 카메라를 오랜 시간 동안 켜놓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일종의 법칙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 선택 자체가 신기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컷들의 사이즈가 점점 작아지잖아요. 그 덕분에 처음에는 주변을 보다가, 점점 위치를 확인하고, 관계들을 보고, 그 공간들 사이에서 주인공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 화면 사이즈라는 게 결국은 거리인데, 그걸 선택한 건 감독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되게 직관적인 연출이었고 또 그게 영화와 잘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도훈

두 영화를 보고 있으면 각각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게 일종의 영화적 관습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두 영화는 저마다가 가질 수 있는 관습들을 조금씩 깨고 있는 것 같아요. <있는 존재>의 경우를 보자면, 요즘엔 잘 쓰지 않는 한 화면 안에 두 명을 같이 놓고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 그렇죠. 그런 화면 구성 자체가 김도현 씨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 영화 후반부를 보면 도현 씨 옆에 남성분이 계속 등장하잖아요. 그분은 특별히 인터뷰나 말이 없던데, 어떤 분이신지.

박시우

주인공의 친구이자 제 친구인데, 너무 미안하게도 인터뷰 장면이 편집되었어요. 영화를 찍을 때 서로 약간 어색했는데, 그 이후에 친해졌어요.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작업하면서 과거의 기록들을 보게 되잖아요. 화면 속의 그 사람이랑 과거에 나는 어떻게 대화했는지, 존칭을 썼는지, 서로 간에 거리감을 어느 정도였는지. 그런 관점에서 지금 다시 보니 굉장히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도훈

<있는 존재>가 말과 대화가 중심인 반면에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은 감독님과 주인공의 대화가 거의 없고, 눈 맞춤 정도만 있는 정도예요. 실제로 세탁소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뺀 것인지 궁금하네요.

정현정

인터뷰를 하기는 했어요. 편집 과정에서 인터뷰도 중요하지만, 인터뷰로 모든 걸 언어화시킬 필요 없이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더 많은 걸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이도훈

감독님과 세탁소 사장님의 거리감 혹은 친밀감은 어느 정도였나요?

정현정

카메라를 최대한 의식하지 않게 하려면 오랜 시간 동안 카메라를 켜 놓는 게 좋잖아요. 촬영한다고는 하는데 밖에서 제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저도 다큐멘터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한 첫 작업이고, 또 그 작업이 너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거라서. 처음에 사장님께 작품에 관해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들었어요. 학생인데 여기를 영상으로 담아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워낙 성격이 소탈해서 그런지 몰라도 저한테 잘해주셨어요. 그리고 사장님의 아들이 저랑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았고, 또 사장님에게 딸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저를 딸처럼 대해주신 것 같아요. 평범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생사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 나누면서 가까워진 것 같아요.

이도훈

그럼 감독님의 목소리가 들어간 부분을 빼신 건가요?

정현정

목소리 나가는 게 너무 민망해서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인터뷰를 쓴다면 제 목소리를 어떻게 제거해야 할까 고민이 되어 다 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시우

저는 제 모습이 스크린에 나올 때마다 고개를 돌리거든요. 평소 자기 목소리를 듣는 경험이 많이 없잖아요. 영상에 자기 모습이 담기는 것도 그렇고. 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김도현 씨에게 고마운 건, 그 친구는 카메라를 어색해하지 않는 스타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이도훈

실제 영화에서는 감독님이 카메라 앞에 나서는 장면이 종종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엘리베이터 안의 벽면에 비친 거였어요.

박시우

엘리베이터 안에서 제 모습이 비친다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집에 있는 작은 모니터로 볼 때는 몰랐는데, 큰 스크린으로 보니까 확실히 보였어요. 앞으로 작품을 만들 때 큰 스크린을 의식해야 할 것 같아요. 제 모습이나 목소리가 나온 부분들은 정말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장면들이라 넣은 거였어요. 제가 말하는 문장이 필수불가결해서 넣은 경우가 있고, 또 처음과 마지막 장면도 흐름상 필요했어요. 제가 말을 하는 게 사람들은 의도한 거로 생각하더라고요. 처음에 “네 호흡대로 말해라”와 마지막에 “네가 나오고 싶은 대로 나와라” 이런 이야기가 있어서 의도하고 한 이야기인지 묻는 분들이 많은데, 의도된 건 아닙니다.

이도훈

주현숙 감독님은 두 영화의 엔딩을 어떻게 보셨는지.

주현숙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은 선택의 결과물이잖아요. 그것이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어떤 것도 정형화되어 있는 건 없잖아요. 모든 작업이 자기만의 형식과 옷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상영한 세 작품 모두 그게 잘 드러난 것 같아서 흥미롭게 봤어요. 그리고 세 작품 모두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있는 존재>는 마지막 장면에서 “네가 나오고 싶은 대로 나와”라고 말하는 부분이 좋았어요.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도 세탁소 사장님이 “가, 이제”라고 말씀하시는 데 그게 꼭 가지 말라, 이게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들렸어요. 공간의 주인공은 사장님인데, 그런 점에서 지금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건 시간뿐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진보적인 정치적 견해를 가진 감독이나 예술가들이 시간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요. 돈은 있다가도 없기도 하지만 시간은 어쩔 수 없이 차곡차곡 쌓이잖아요. 한 공간에서 23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했고 그래서 그 공간의 주인으로 표현되는데 막상 사장님이 “이제 가”라고 말할 때, 그 말은 마치 “이제는 나를 여기서 못 볼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죠. <있는 존재>에서 “네가 나오고 싶은 대로 나와”라고 이야기할 때 타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같잖아요. 어떤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게 이상한 걸까요? 그런데 그런 질문조차도 잘 하지 않잖아요. 박시우 감독님은 FTM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 없이 당사자가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죠. 그런 식의 접근법 자체가 영리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이도훈

말씀을 듣다 보니 두 영화 모두 영화를 여닫는 것이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네요. <어쩌면 더 아름다웠을>은 세탁소 사장님이 셔터를 내리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는데, 이후에 사장님을 못 뵈었는지 궁금합니다.

정현정

영화 끝나고 연락을 드렸고,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할 때 보러 오셨어요. 영화 보고 말씀도 해주시고. 그 이후로도 한 번씩 찾아가서 뵙고 있어요.

박시우

영화 보시고, 사장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정현정

수고했다(웃음). 문을 닫았을 때가 2016년 5월이었고, 영화제가 다음 해 3월이었어요. 꽤 시간이 지났을 때죠. 그때의 일을 잊을 수 없겠지만 당시 감정으로부터 조금 빠져나오신 것 같았어요. 영화 보니까 기분 이상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도훈

그럼 다른 곳에서 세탁소를 새롭게 열었나요?

정현정

문을 닫고 자리가 없어서 1년 정도 쉬시다가,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발이 끝나고 난 다음 주에 다른 곳에서 오픈하셨어요. 오래된 세탁소 하나를 인수하셔서 다시 일하고 계세요.

이도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공간의 변화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현숙 감독님께서 써주신 글 중에 좋은 구절이 하나 생각나네요. ‘느긋한 말 사이에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일상의 속도, 말의 속도, 삶의 속도,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삶의 변화가 각기 다른 걸 예리하게 짚어내신 게 아닐까 싶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두 감독님께 한 말씀씩 부탁드리고 오늘 이 자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시우

주인공으로 나온 김도현 씨와 여전히 친구고 그 친구에게 다음에 우리가 영화를 찍으려면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해야겠다고 말한 적 있어요(웃음).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난 이후에 장편 영화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호러나 SF 판타지 같은 극영화 쪽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호러 영화가 갖는 전복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귀신은 항상 여성으로 나오는데, 여자는 죽어야지 무서운 존재가 된다고 제가 써놓은 게 있어요. 호러 영화의 전복적인 측면을 이용해서 여성주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정현정

긴 시간 동안 영화도 봐주시고,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작업은 기획 중이긴 한데, 명확하게 잡히지 않아서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오늘 보신 작품과 비슷한 주제가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습니다.

* 녹취 및 정리 : 이지혜,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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