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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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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OF 발견과 주목’ 10월 프로그램_ < 어떤 점거 > GV

일시
2017.10.17(화)
장소
인디스페이스 ( IndieSpace )
진행
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참석
이도훈, 젤리, 공기
토크
도시에 대한 권리는 만인에게 고루 분배된 것이 아니라 소수에게 독점된 것이다. 이를 직접 드러내는 도시적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일반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도시 주거지역의 상업화로 인해 그 일대의 지대가 상승하면서 원주민이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거나 영세 자영업자들이 건물주로부터 내몰림을 당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어떤 점거>는 2009년 말 홍대 두리반이 새로운 건물주로부터 강제철거를 당하면서 그곳을 지키기 위해 점거 농성을 벌였던 상근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대표되는 도시의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숙고하고 나아가 도시의 거주자들이 도시에 대한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실천적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또한, 이 영화는 자본이 지배하는 도시의 질서로부터 이탈해 대안적이고 상상적인 세계로서의 두리반을 만들기 위해 연대했던 상근자들의 노력과 헌신에 대해 존경과 애정을 표하고 있는 사적인 기록물이기도 하다.

이도훈

안녕하세요, 관객과의 대화 안녕하세요,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이도훈입니다. <어떤 점거>를 연출한 젤리 감독님과 이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신 공기 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젤리

안녕하세요, 영화 만든 젤리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기

안녕하세요, 영화에 잠깐씩 출연한 공기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도훈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또 두리반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젤리

저는 원래 홍대에서 노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자주 놀던 곳에 있던 홍대 두리반이 철거된 다음에 그곳에서 세입자들이 농성한다고 들었어요. 현장을 직접 보기도 했고, 친구들이 점거농성장에 들어갔다가 온 다음에 같이 가보자고 해서 간 게 첫 시작이었어요. 그 전에도 여러 철거 농성장에서 놀고 그랬어요. 용산 때도 자주 놀러 갔었는데, 처음 철거 농성장에 간 건 일산동구 풍동에서 아파트가 많이 지어질 무렵인 2004년이었어요.

이도훈

두리반에 처음 가신 건 구체적으로 언제인가요?

젤리

점거 농성이 시작된 지 99일 되는 날부터 가기 시작했어요. 그게 2010년 2월 말에서 3월 초였던 것 같아요.

이도훈

오랜 시간 동안 두리반과 연대를 해오셨는데, 촬영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어떤 점거>는 핸드폰으로 촬영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젤리

아이폰4로 촬영했습니다. 제가 아이폰 홍보대사는 아니지만 지금 아이폰7을 쓰고 있거든요. 제 핸드폰이 아이폰4에서 아이폰7으로 바뀐 게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걸 나타내주는 것 같아요. 두리반에 처음 드나들면서 공기 님도 알게 되었어요. 그때 공기 님은 10대였고, 활동가로 유명한 분이었거든요. 그리고 영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을 두리반 농성장에서 만났는데, 제게는 그들이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당시에 그 사람들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이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런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에 촬영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영화에 나오듯이 두리반에 영화 연출을 하시는 분이 두 분이나 있었어요. 저는 그분들처럼 카메라 장비를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아이폰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화질을 자랑하는 영상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마침 핸드폰 바꿀 때도 되고 그래서 아이폰으로 찍었어요.

이도훈

삼각대, 조명, 마이크 등의 장비는 별도의 장비 없이 오로지 핸드폰 동영상 기능만으로 촬영하신 건가요?

젤리

네, 그렇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다른 분들처럼 저도 두리반 농성장의 상근자였기 때문에 활동하는 중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놀지 말고 기록에 전념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가장 재미있고 또 감동적인 상황 중 일부는 기록 못 한 게 있어요. 그런 순간에는 저도 촬영을 제쳐두고 같이 어울렸거든요. 그리고 별도의 촬영 장비는 없었습니다. 조명도 아이폰 라이트를 사용했어요.

이도훈

현장에서 젤리 감독님과 공기 님은 어떤 사이였나요?

공기

저 같은 경우는 2010년 1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두리반에 갔어요. 영화 속에 ‘도둑괭이’라고 사회를 많이 보시는 분이 있어요. 도둑괭이 님과 인연이 있어서 자주 만나고 그랬는데, 그분이 라디오 프로그램을 하나 진행하면서 자기가 두리반이라는 곳을 가봤는데 홍대에 사연이 너무 딱한 곳이 하나 있으니 제게 한번 가보라고 했어요. 한번 가보겠다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편선’이라는 기타를 치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두리반에서 공연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 인연들에 이끌려서 두리반에 갔어요. 그리고 평소 활동하면서 용산 참사 때 만났던 친구들을 두리반에서 만날 수 있었어요. 젤리 감독님의 기억력은 대단한 것 같아요. 우리가 점거 농성한 지 99일째 되는 날에 만났다는 걸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라워요. 젤리 님을 처음 만났을 때 지금처럼 청재킷을 입고 있었어요. 긴 파마머리에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고. 지금 저는 젤리한테 편하게 말을 놓는 사이고, 나이 차가 있긴 하지만 서로 편한 친구 사이예요. 젤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해질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이도훈

지금 활동하는 단체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공기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하 맘상모)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리반처럼 쫓겨날 위기에 있는 상인들을 지원하고, 그 사람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같이 싸우거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떤 사장님이랑 같이 왔어요. 이분도 200일이 넘게 가게에서 농성하고 있어요. 강제집행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인데, 같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도훈

가편집본이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공기

일단 신기해요. 젤리가 <어떤 점거>를 처음 보여줬을 때는 영화 속에 나오는 사람들을 다 초대해서 의견을 듣는 자리였어요. 이후에 누가 나오는지 점검하기 위해서 다시 봤고, 또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할 때도 가서 봤어요. 그리고 이번에 제가 리뷰를 썼는데, 다시 보니 또 다르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처음 봤을 때는 주로 제가 나오는 부분을 확인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이 영화를 다시 보니 10대 후반이었을 때의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게 저한테는 신기했어요. 두리반 점거 농성 당시에는 매일 같이 봤지만, 지금은 못 보는 그 사람들이 5년이 지난 상황에서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이번에 다시 보면서, 두리반 투쟁은 끝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 활동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점거>의 첫 부분을 보면 ‘가로등을 켜라’는 투쟁이 나와요. 이 영화에 대한 리뷰에서 두리반은 꿈같았다고 썼지만, 그땐 정말 치열한 현장이었어요. 단순히 두리반이 특별해서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그곳이 꿈같아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때 그곳은 너무 치열했고 그 치열함이 지금 여러 곳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도훈

감독님은 본인의 작품을 일종의 사랑 고백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 에서 그런 것인지 궁금합니다.

젤리

두리반 농성 현장을 촬영한 것은 기록을 위해서였어요. 다른 감독님들처럼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두리반 점거농성장에 있는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1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본의 아니게 제 카메라에 담긴 그분들에게 결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 덕분에 <어떤 점거>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말하자면, 영화제 출품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을 다 초대해서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만든 거였어요.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제가 누군가를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영화를 사랑 고백이라고 말한 것은 일종의 선언이기도 해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사랑 고백이다, 그러니 조금 어설퍼도 이해해달라는 식이죠.

이도훈

감독님이 촬영하고 있을 때 현장에 있던 분들은 어떻게 반응하시던가요?

젤리

영화에서 보신 정도의 반응이었어요. 그분들이 카메라에 반응하는 부분을 넣기도 했지만, 보통 제가 촬영하고 있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또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않고 편하게 행동하셨어요. 대부분 그런 장면 위주로 편집했어요. 별로 신경 안 쓰셨던 것 같아요. 쟤 또 찍고 있네, 정도의 반응이었어요.

관객 1

영화 잘 봤습니다. 보이스오버나 자막을 통해 감독님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젤리

앞부분에는 두리반이라는 철거농성장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그게 없으면 관객이 보기에 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영화는 두리반 상근자를 위해 만든 것이었지만 후에 다른 누군가가 보게 된다면, 그런 분들을 위해 두리반 농성장에 대한 배경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초반 자막은 그런 의도로 넣었어요. 그리고 편집 자체가 연출자의 의도를 담고 있는데, 제가 조금 조급했던 것 같습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히 있는데, 제 조급함 때문인지, 제가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자막에 욱여넣은 게 아닐까 싶어요. 특히 뒤로 갈수록 제 개입이 많았죠.

관객 2

공기 님에게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두리반 활동이 지금 하고 계시는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고, 또 두리반과 같은 상가 문제에 순수하게 참여할 때와 지금과 같이 상임활동가의 위치에서 참여할 때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공기

굉장히 날카로운 질문이네요. 두리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두리반이 있기 전에 용산 참사 현장에 가끔 연대를 갔어요. 거기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지만, 그 안에는 기존의 단체들이 무언가를 하고 있어서 제가 끼어들기 힘들었어요. 주체적으로 연대를 하고 싶어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점에서 제게 두리반은 조금 달랐죠. 거기서 상근자가 되어서 살아버린 것과 거기서 많은 사람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차이였어요. <어떤 점거>를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할 때, 충격을 받았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두리반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저는 사람들이 두리반을 모를 리 없을 거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두리반을 모른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시간이 정말 무섭구나, 이렇게 흘러가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구나. 두리반을 통해서 강제철거 문제와 쫓겨나는 사람들에 대한 의식과 감수성을 기를 수 있었어요. 이후에도 많은 현장에 연대를 갔어요. 두리반 끝나고는 명동에 있는 재개발 구역에 갔고, 두리반이 새로 운영하게 된 곳 근처 카페에도 연대를 갔어요. 두리반 투쟁이 끝나고 오래 지나지 않은 시간에 두리반이 재오픈했어요. 2012년도 초인가요? 맘상모가 세워진 게 2013년도예요. 그즈음 두리반 근처에 새로 오픈한 카페를 운영하던 사장님과 같이 활동하던 분의 친구가 쫓겨 날 위기에 처했고, 여성 활동을 하던 분이 차린 카페가 일 년도 안 돼서 재건축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어요.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상인들끼리 모여서 연대할 수밖에 없었어요. 두리반 같은 경우에는 전국철거민연합이라는 조직이 있었고, 또 그곳은 사실 재개발 지역이 아니라 개인 간의 분쟁이었기 때문에, 그 구조 안에서 약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게 있었어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도 2002년도에 처음 만들어지고는 단 한 번의 개정도 없던 상태였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 한 법이었죠. 그래서 그 시기를 중심으로 두리반 사장님과 서로 알고 지내던 사장님들이 2013년도에 한 번, 2015년도에 한 번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주장했어요. 그때 맘상모라는 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맘상모는 두리반과 같이 쫓겨날 위기에 있는 많은 가게가 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우면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이도훈

용산에서 두리반으로 넘어오는 시점인 2010년 전후로 도시재개발을 둘러싼 철거 투쟁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보통 철거 투쟁은 주거 문제와 밀접히 연관된 경우가 많아 그것이 단순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는데, 상가 문제는 재산권 분쟁 정도로 치부되면서 연대가 잘 안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두리반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런 상가 철거에서도 조직적인 운동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두리반이 상근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연대를 꾸려나갈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젤리

그 부분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두리반을 소재로 삼은 영화 중에 두리반을 음악 공연 중심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두리반에 사람들이 모인 것은 음악 때문이라고는 단정하기 힘들어요. 음악은 여러 요인 중 하나였죠. 대신에 두리반에 모인 사람들은 그곳에 와서 산다는 것의 감각을 찾은 것 같아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모였어요. 학생,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그들은 각자 주어진 삶에서 자기 몫을 하도록 강제된 삶을 살다가 그냥 연대하러 왔던 두리반에서 해방 공간을 찾은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주어진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거죠. 물론 농성 주체는 안종녀, 유채림 부부였지만, 상근자들도 투쟁도 하고 놀기도 했어요. 그분들이 자기 시간을 투자했던 건 두리반이라는 공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나를 발견할 수 있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두리반은 참여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어요. 그래서 두리반이 사랑스러운 거죠.

이도훈

두리반과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상가 투쟁과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기

표면적인 차이가 있다면, 두리반은 5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그곳이 본래 있던 장소를 점거했어요. 요즘에는 명도소송(매수인이 부동산에 대한 대금을 지급했음에도 점유자가 부동산의 인도를 거절하는 경우 제기하는 소송)을 통한 강제집행의 강도가 높아져서 상가를 점거한 상태에서 투쟁하기가 힘들어요. 영화에서 보신 것처럼 강제집행이 언제 또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거든요. 그런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두리반에서는 강제집행에 대한 불안감이 덜했어요. 두리반에서는 점거 투쟁이 삶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일로 하고 있잖아요. 지금 저는 상가투쟁을 활동인 동시에 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두리반 때와는 다른 중압감을 느끼고 있어요. 오늘날 상가투쟁은 과거와 비슷하면서도 그에 반해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얽혀 있다는 차이가 있어요. 그런 상황을 둘러싼 조건들의 차이들도 크고.

이도훈

두리반 같은 경우에는 상가 건물 하나를 두고 그 건물의 주인, 그 건물을 매입한 대기업, 한전 등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자본 대 개인의 대결 구도가 형성될 수 있었죠. 하지만 대부분의 상가 투쟁은 개인 대 개인의 대결 구도로 좁혀지잖아요.

공기

네, 그런 부분들이 확실히 달라요. 두리반 같은 경우 GS건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고 또 그 일대가 재개발 구역이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특징들이 있었어요. 반면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가임대차 활동들은 개인 간의 분쟁으로 바라보기 쉬운 구석이 있어요. 임대업이 한 개인의 생계수단인 경우도 분명히 있지만 보통 상가분쟁은 장사가 잘 되거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그 일대 지대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새로운 건물주가 건물의 사용용도 자체를 바꾸면서 발생하는 분쟁이 있어요. 건물주가 바뀐 다음에 임대료가 폭등하거나, 리모델링을 이유로 건물주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죠. 건물주들 경우에는 단순히 건물만 가진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그 지역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건물주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상가임대차 분쟁 자체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인 게 아니라 그 뒤에 더 복합적인 무언가가 있는 거죠.

관객 3

유채림 선생님은 두리반이 하나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셨고, 그걸 바탕으로 다른 투쟁이 일어났을 때 두리반과 같은 경우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두리반 이후에 상가투쟁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두리반이 한 번의 싸움으로 끝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특히 영화 끝부분에 “우리에게 더 많은 두리반을”이라는 구호가 나오는데, 그건 두리반의 정신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인가요? 두 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젤리

두리반 투쟁이 갖는 의의는 그것을 2010~2011년에 있었던 낭만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느냐 반대로 그 투쟁의 의의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습니다. 두리반처럼 상징적인 결과를 남겨달라고 부탁하는 곳이 있다는 점에서 두리반은 분명 성공할 철거 투쟁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결과적으로 두리반은 시행사로부터 과거와 비슷한 수준의 가게를 얻어 냈잖아요. 그런 정도의 배상을 받아낸 초유의 성공 케이스로만 두리반 투쟁의 의의가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두리반 점거농성을 통해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이 그 공간적 조건 안에서 다른 삶을 꿈꿀 수 있게 한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2009년 2월 19일, 용산 남일당 사태가 있을 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침체된 분위기였는데, 그 일이 있고 불과 일 년도 지나지 않은 2009년 말부터 있었던 두리반 점거농성 당시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당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단식 투쟁할 때 전국적으로 희망버스가 그곳을 다녀갔고, 홍대에서 비정규직 환경미화원분들이 투쟁할 때 많은 사람이 연대했었잖아요. 특히 2010년은 기존의 노동자 중심의 투쟁에서 벗어나 노동자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투쟁의 주체로 나서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죠. 또 전 세계적으로 기존에는 실험되지 않았던 기발하고 자유로운 형식의 투쟁이 일어났어요. 2010년에 아랍의 봄이 있었고, 2012년에는 월가시위가 있었고, 2013년에는 터키 반정부 시위가 있었죠. 이런 복합적인 상황과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그 당시에 저는 세계가 변화하는 한 시점의 소용돌이 속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두리반이 다른 모든 것들을 이어주는 하나의 점으로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저는 두리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근시안적으로 5년이 지났는데 달라진 게 뭐가 있냐고, 또 두리반처럼 음악과 함께 투쟁하는 곳이 어디 있냐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박근혜정권퇴진 집회와 관련해서 여러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찾아야 할 의미 있는 지점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긴 안목에서 보고 반짝이는 지점들을 놓치지 않는다면 두리반은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기

젤리 님이 이야기한 많은 부분에 공감합니다. 두리반에 대한 평가는 그것의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두리반 점거농성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두리반이 그랬던 것처럼 자기 삶의 터전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년에 활동으로 했던 것 중 하나가 서대문 형무소 맞은편에 있는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는 운동이었어요.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두리반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서 옥바라지 골목에서 장사하는 사장님들에게 이 골목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을 같이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분들이 정말로 이전을 해야만 한다면 될 수 있는 한 옥바라지 골목을 영영 떠나는 방법만은 아니길 바랐어요. 물론 그게 다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못했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럼 그건 실패한 운동이 아니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옥바라지 골목 운동이 두리반 운동의 의미를 이어나간 것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만큼 두리반은 굉장히 큰 실험이었어요. 다양한 것들이 가능한 실험. 우리가 농성장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두리반 점거 농성이 널리 알려진다면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도훈

자본이 바뀌어놓는 세상의 속도는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그것을 거스르거나 역행하거나 막으려고 하는 삶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큰 힘에 맞서고자 하는 힘들은 아직 적고 흩어져 있는 상태이지만, 언젠가 그 힘들이 쌓이면 좀 더 조직적인 모습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이제 정리하는 차원에서 두 분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젤리

평일 저녁인데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시기 전에 같이 사진 찍고 가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 차기작인 <어떤 친구>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공기

건물을 소유한 사람의 권리가 있다면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의 권리도 있는 것인데, 지금은 대부분 건물을 소유한 사람에게 권리가 집중되어 있어요. 법적으로도 그렇고 사람들의 인식도 그렇고 대부분 건물 소유주를 더 우선시하죠. 그런 인식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데, 두리반은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한 싸움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건물을 점유하고 건물의 권리를 만들어내고, 그리고 그 건물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것.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필요할 것 같아요. 혹시 지나가시다가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이나 상가 투쟁이 벌어지는 곳을 본다면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녹취 및 정리 : 이지혜,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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