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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존재로서의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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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DOF 발견과 주목’ 11월 프로그램_<스물다섯번째 시간> GV

‘SIDOF 발견과 주목’ 11월 프로그램_<스물다섯번째 시간> GV

일시
17.11.14(화)
장소
인디스페이스 ( IndieSpace )
진행
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참석
김성은(<스물다섯번째 시간> 연출), 딸기(강정 지킴이)
토크
<스물다섯번째 시간>은 제주 해군기지기 건설에 반대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활동가들의 연대와 투쟁을 기록한 작품이다. 쉽게 말해, 이 작품은 제주 강정 마을에 관한 다이어리 필름이다. 김성은 감독은 제주 강정 마을에 상주하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담아냈다. 그 영상 속에는 활동가들의 연대를 비롯해 활동가들과 공권력 간의 갈등, 반목, 충돌이 있다. 때로는 거칠고 투박하게 또 때로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이게 기록한 이 영상들의 시간은 단절이 아닌 지속의 법칙을 따른다. 감독은 제주 강정 마을에서 벌어진 갖가지 일들을 기록하고, 수집하고, 모으면서 그것들을 비선형적으로 배치했다. 이 영상들에 담긴 특정 인물, 사건, 퍼포먼스, 장소, 행사 등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강정에 얽힌 기나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가 된다. 이로 인해 강정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긴급하게 다루어져야 할 현재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도훈

안녕하세요, 이도훈입니다. 영화 보셔서 아시겠지만, 2007년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주민찬반투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 해군기지가 완성되면서, 강정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 밖에서 차츰 멀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제주 강정 마을을 다시 환기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김성은 감독님 그리고 딸기 님과 <스물다섯번째 시간>과 관련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나누기에 앞서, 두 분이 강정 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서 들어봤으면 합니다.

김성은

안녕하세요, 영화 만든 김성은입니다. 베를린에서 공부하면서 그곳에서 살던 중 우연히 한국에 한 달 정도 올 일이 있었어요. 그 전에 강정에 관한 소식을 접하면서 뭔가 마음에 동요가 일었고, 한국에 들어와서 일주일 정도 계획을 잡고 강정에 갔어요. 막상 그곳에 가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뭔가를 느꼈고, 그래서 애초 계획과 달리 강정에 한 달 정도 머물렀어요. 이후 준비를 제대로 해서 강정에 다시 와서 본격적으로 촬영을 했어요.

딸기

안녕하세요, 강정 지킴이이자 강정 평화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딸기입니다. 저는 영화에 잠깐 나온 오두희 선생님,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평화바람’이라는 작은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정에는 2008년에 처음 갔어요. 2008년 겨울에 강정 마을 주민들이 농성하고 있다고 했을 때, 뭐라도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투쟁 기금을 모아서 2009년으로 넘어가는 그즈음에 강정에 갔어요. 그 전까지는 육지에서 지내고 있어서 제주도에 내려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에 2010년 봄에 해군기지 공사 시작을 앞두고 강정 마을을 지키던 분 중에 일부가 고소를 당했고, 양윤모 영화평론가가 70일 넘게 옥중 단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일주일 정도 계획으로 내려갔어요. 그 이후에도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그곳에 머물렀는데, 지금까지 계속 강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도훈

이 영화는 어떤 계기로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성은

이 작품을 만들기 전에 단편 실험영화 촬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스물다섯번째 시간>은 딱히 어떤 연출 의도를 갖고 접근한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편집하면서 의도한 지점들이 생긴 경우입니다. 평소 제가 카메라를 일기장처럼 가지고 다니면서 뭔가를 기록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강정에 처음에 갔을 때도 별생각 없이 카메라를 현장에 들고 다니면서 촬영을 했어요. 그 당시에는 경찰들과 충돌이 잦았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제 카메라에 반응하는 걸 보면서, 카메라를 든 사람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강정에 오기 전에는 투쟁 현장에 대한 경험도 없었어요. 강정에서 일련의 일들을 경험하면서 강정에서 뭔가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은 계속했는데, 제가 찍어 놓은 영상만으로 뭔가를 만들기 힘들다는 걸 절감한 적이 있어요. 그렇다고 베를린 생활을 아예 접고 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작업할 여건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전공을 영상인류학으로 바꾸고, 필드 워크 기간에 강정에 와서 영상을 기록하고, 모으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도훈

영화 제목은 시간의 지속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에서 달력의 시간은 없고 시계의 시간만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러니까, 연월일로 표시되는 달력의 시간이 아니라 몇 시 몇 분으로 표시되는 시계의 시간만이 표시되어 있어요.

김성은

영화의 구조나 편집과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하나는 장소가 사라지고 있다는 거였어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장소들이 있었는데, 그곳은 투쟁과 관련된 의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일부 주민들조차 그 장소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 같았어요. 다른 하나는 투쟁 현장에서의 시간이었어요. 대부분의 투쟁 현장이 그렇겠지만 매일매일 비슷하게 흘러가잖아요.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2015년에 군 관사 건설 현장에서 행정대집행이 있었어요. 경찰이 들이닥치기 전에 오두희 활동가가 우리는 25시를 살고 있다는 말을 했어요. 그 말이 평소 제가 생각하고 있던 고민을 정확하게 짚어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말을 제목에 차용해서 썼어요. 영화 속에 날짜가 없는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영화 속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작업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해군기지는 완성되었고, 그게 결과로 나왔잖아요. 강정 마을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투쟁의 시간이 갖는 의미가 사라질 것 같았어요.

이도훈

어쩌면 그건, 구체적인 시간을 언급해서 그 시간이 과거로 굳어져 버리는 것을 피하려는 연출적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영화 속의 몇몇 장면을 보면, 딸기 님이 강정에서 매일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그곳에서의 시간 감각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죠.

딸기

살다 보면 물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다가올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순간에 내가 한 행위들과 그것이 내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기억들이 거의 남지 않아요. 2012년도 3월에 구럼비 발파가 있었고, 그즈음 강정의 활동가들은 하루 10시간 정도를 길에서 보냈어요. 강정마을에 있는 가로수가 벚나무인데요, 봄이 되면 벚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화창하게 피어요. 그런데 2012년, 그러니까 구럼비 발파가 있었을 때 제 기억 속에는 벚나무가 없어요. 매일 그 길에서 10시간 이상이나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 길에 벚나무가 있다는 건 2014년 봄이 되었을 때야 알았어요. 2012년만큼 많이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때도 경찰과 항시 대기 상태에 있었어요. 제게 강정에서의 시간은 객관적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 아니라,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반복되면서 만들어진 기억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이도훈

강정 마을의 투쟁이 장기화하면서 그 투쟁의 무게 중심이 기억으로 옮아간 것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스물다섯번째 시간>은 빼앗긴 강정의 시간을 되돌려 놓으려는 시도였던 것 같아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동료이자 친구인 김성은 감독과의 첫 만남은 어떠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딸기

저도 그랬지만, 현장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친구가 카메라를 들고 왔을 때 그리 반기지 않았어요. 현장에 있는 카메라는 좀 잔인한 구석이 있어요. 우리를 가장 많이 찍는 건 경찰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를 많이 찍는 건 언론이에요. 그들은 자극적인 영상이 될 만한 것을 찾아다녀요. 그런 부류의 카메라에는 언론만이 아니라 잠시 와서 뭔가를 기록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어요. 처음에는 외면했던 것 같아요. 멀리서 김성은 감독이 걸어오는 게 보이면 프레임 안에 걸리지 않으려고 일부러 빙 둘러서 걸어가곤 했어요.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오는 분들이 많은데, 대부분 이미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현장에서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말과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우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다뤄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보여주는 건 강정의 아주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에요. 김성은 감독의 경우는 자기의 주관적 판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는 점에서 제게 큰 위로를 주었어요. 많은 사람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것처럼 영상을 찍지만 김성은 감독은 정말 솔직하게 자신이 이곳에서 배운 것을 보여줬어요. 우리를 촬영의 대상자가 아니라 친구나 동료로 대해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도훈

영화 속 일부 장면은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최근 시위 현장이나 집회 현장을 찍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들을 활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핸드폰 액티비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촬영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현장감, 긴박함, 투박함이 잘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김성은

이 영화는 제가 직접 촬영한 영상을 비롯해 활동가들이 다양한 장비로 찍은 영상을 같이 활용해서 만들었어요.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이나 그 정도 퀄리티의 영상들이 중간중간 나와요. 예를 들어, 경찰차 안에서 촬영한 것은 연행 중이던 어느 활동가가 찍은 거고, 대집행 때 제 카메라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다른 사람 카메라를 빌려서 급하게 촬영한 적도 있어요. 핸드폰 촬영 자체를 의도했던 건 아니에요. 한 번은 강정평화학교에 왔던 학생들과 핸드폰으로 강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그걸 편집하는데, 하루 만에 결과물이 나왔어요. 대안학교 친구들은 현장에 많이 가기 때문에 그런 식의 작업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1

두 분에게 각각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속 퍼포머와 어떻게 협업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강정의 최근 상황과 사드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관해 평화바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딸기

평화바람은 2003년도에 만들어진 평화 운동단체입니다. 이라크 파병 반대를 위해 전국 70여 개 도시를 유랑하며 사람들을 만나다가 그들과 대추리에 정착해서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을 했어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검둥소 출판사에서 나온 『불어라, 평화바람』이라는 책도 있어요. 최근 상황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해군기지가 준공된 지 1년 6개월이 넘어가고 있어요. 평화바람에서 우려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해군기지가 항구로서 적절한가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군이 해군기지를 사용하면 그들이 사드 문제로 중국과 마찰을 일으켰듯이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가 항구로서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우리 단체에서 모니터링 한 결과, 문제가 있었어요. 이곳에 배가 들어오고 나갈 때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려요. 작은 예인선이 군함을 끌어와야 해요. 제가 어제 마을 소개를 하다가 전직 해군 출신 분에게 이런 일이 흔한 거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측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한 것처럼 큰 태풍이 오면 군함들이 더 크고 안전한 항구로 피항을 갈 겁니다. 그런 경우만 생각해봐도 제주 해군기지가 입지 선정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기지 완공 이후 총 7차례 외국 군함이 들어왔어요. 그중 다섯 번은 미군 군함이었고, 한 번은 바다를 측량하는 측량함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기뢰를 제거하거나 설치하는 소해함이었어요. 두 대의 조금 이상한 함정, 그러니까 훈련하는 함정이 아니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두 대의 함정이 최근 3개월 동안 두 번에 걸쳐서 머물다 갔어요. 이런 부분들 때문에 앞으로 오게 될 변화를 걱정스럽게 생각하게 돼요. 그리고 미국과 한국의 합동 군사훈련이 여러 차례 진행되고 있는데, 그런 군사훈련이 있을 적이면 항상 군함들이 제주에 들러요. 이틀에서 사흘 정도 머물면서 군함에 있는 쓰레기를 버리고, 똥물을 치우고, 평형수를 교체해요. 그러면 주변 해역에 심각한 오염을 초래해요. 사병들은 배에서 내려 제주 시내를 관광해요. 제주 해군기지가 안보를 명목으로 지어졌지만, 일종의 휴양지처럼 이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김성은

기본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모든 장면은 강정의 일상입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따로 퍼포먼스를 한 건 아니에요. 영화 중간에 광장에서 하는 퍼포먼스는 그걸 한 친구와 제가 협업을 한 겁니다. 그 친구가 원래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인데, 저는 영상을 찍으니까 같이 해보자고 해서 영화와는 별개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문화예술 활동도 강정 투쟁이나 일상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편집할 때 큰 틀에서 퍼포먼스도 같이 넣었어요.

이도훈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퍼포머가 강정천에 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그분이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있던데, 그게 특별히 의미가 있는 건가요?

김성은

귤 나뭇가지예요. 퍼포먼스 제목이 ‘안녕, 봄’인데요. 겨우내 살아남은 귤 가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봄을 맞는 의식을 구상한 거였어요. 일단 강정천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또 죽은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의미가 있겠죠.

이도훈

그 퍼포먼스도 강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하나라고 생각하신 거죠?

김성은

네, 그런 장면들이 많아요. 노래, 춤, 퍼포먼스를 하시는 분들이 와서 각자 뭔가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강정에서 사는 사람 중에도 예술 활동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분들과 연대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도훈

강정이라는 투쟁 현장에는 시위와 축제가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카니발리즘이 보인다고 할까. 시위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지만, 그 중간마다 축제가 벌어지기도 하죠.

김성은

축제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행사는 많이 있었죠.

딸기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 나오는 춤과 노래가 있어요. 2011년에 처음 투쟁을 기획했을 때부터 그 춤과 노래가 있었는데, 거의 모든 행사의 마지막을 그 춤과 노래가 장식했어요. 온종일 경찰하고 싸우고, 누구는 연행되고 그러는 가운데도 마지막에 집에 갈 때는 노래하고, 춤추고 그랬어요. 거기서 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매번 즐겁게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투쟁을 계속하면서 여흥을 즐기는 순간이 있어야 하잖아요. 일종의 의례처럼 강정이라는 동네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춤과 노래가 있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관객 2

제 경우는 영화 속 ‘호수’가 이야기했던 경우와 정반대인 것 같아요. 제 옆에 앉아 있는 ‘평화’와 저는 군 관사 기지 투쟁 때 함께 하지 못했어요. ‘소란’이 결혼할 때도 저는 강정에 있지 않았어요. 영화를 보면서, 저처럼 육지에 나와 있지만, 마음은 강정에 가 있는 사람들도 강정과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딸기

오늘 오신 분 중에도 어떤 분은 항상 강정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조금 오래 강정에 있으면서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고생이 많다, 미안하다, 애쓴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강정에서 진짜 큰 배움을 얻고 있어요. 그곳에 있으면서 진실은 엄청 큰 어떤 것에 있지 않고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배움은 어떤 어려운 순간과 힘든 시기가 한참 지난 후에 얻게 된 것인데, 어떻게 보면 그런 어려운 순간만을 경험하고 자기 안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못한 채로 우리가 서로 끊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시나 그런 마음 때문에 강정에 다시 오기 힘든 것도 있지 않을까,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관객 3

영화 잘 봤습니다. 저는 2007~2008년 해군에서 정책 홍보 실장의 방위병으로 근무했습니다. 어느 날 평소 온화하던 실장님이 버럭 화를 낸 일이 있었는데, 그 날 결재를 받기 위해 들고 있던 서류 중에는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주민들 설득하는 방식을 적어 놓은 게 있었어요. 그 당시 이게 대체 뭘까 궁금했어요. 제대 후 강정에서 공사가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라는 옴니버스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했어요. 저는 그때 예산과 촬영 일정 문제로 5일 밖에 있지 못했지만, 그 이후로 제주도에 올 때마다 서귀포에 들르면 강정에 서 서성거리다 갔어요. 제게 강정은 단순히 어떤 지역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 곳곳에는 정말 많은 강정이 있고, 또 다른 강정이 나타나면 그때는 함께 할 생각입니다. 감독님과 활동가님께 각각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이 영화를 통해 어떤 것을 성취했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영화를 만들고 나서도 남는 본인에게 남아 있는 질문이 있다면 그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딸기 님에게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김성은

영화를 완성한 것 자체가 하나의 성취가 아닐까 싶어요. 편집을 마무리해서 강정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 일 년 전쯤인데, 그분들에게 영화를 보여줬다는 게 제게 있어서 가장 큰 성취였던 것 같아요. 영화 만들기 전에 긴장도 많이 하고 조바심도 냈었는데, 강정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시간 낭비한 건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쉬운 건, 저는 평소 영화의 내용과 형식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처음부터 주제의식이나 의도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되게 많이 헤맸어요. 특히 논리적 서사와 거리를 두려는 작가적인 측면과 강정에 사는 활동가적인 측면이 갈등하고, 양립하고, 분열하고, 다투는 과정을 겪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이 아직도 숙제처럼 남아 있습니다.

딸기

감사합니다. 어려운 일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강정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여러 사람과 만나다 보면 대화를 오래 하기 힘든 분이 있어요. 뭐랄까, 너무 꽉 막혔다고 할까. 저와 아주 다른 입장에 서 있는 분만이 아니라 저와 입장이 비슷한 분 중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게 힘들어요. 그러니까, 이 싸움을 하면서 여러 경찰, 공무원, 군인들과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그중 한 사람이라도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 의심을 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싶어요. 제게는 그 부분이 항상 억울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꼭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발견될 때 혹시 나도 그러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저는 그런 면에서는 닫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많은 분이 연대 활동에 대해 열려 있었으면 해요. 활동할 때 비전과 희망이 있어야 하잖아요. 공사 준공을 앞둔 시점에서 사람들이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분들을 안내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고 계속해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하면서도 뭔가 괴리감 같은 걸 느꼈어요. 공사 과정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고, 또 펜스가 다 걷혔을 때 충격과 공포를 느꼈는데, 그 와중에 사람들이 와서 물었을 때, 저는 이제 무서워서 그만둔다는 말은 못 하고 제가 하는 활동의 비전을 말해야 하잖아요. 서로의 나약한 모습이나 서로의 다름이 노출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좀 너그럽게 다가설 수 있었으면 해요.

이도훈

좋은 질문과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관객분이 해주신 질문 자체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하건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특히 최근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서 곧바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은데, 혹시 우리는 그런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분명 한 건, 아직 청산해야 할 것들과 풀어야 할 문제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다는 거겠죠. 이제 오늘 대화의 자리를 정리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혹시 두 분께서 아직 못다 한 말이 있으시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해주셨으면 합니다.

딸기

멀리 있으니까 가끔 오시길 바랍니다. 또 다들 바쁘니까 자주 오라고는 못 하겠어요. 강정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잘 지내고 있으니,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는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주 더디고 천천히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강정에 있으면서 항상 세상이 왜 이렇게 안 바뀌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무심할까, 우리는 언제까지 소외된 삶을 살아야 할까, 그런 생각들을 한 적이 있어요. 근데 되돌아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세상은 많이 변했고,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서로 힘들 때 가끔 얼굴 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은

이 영화를 좀 더 많은 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강정에 사는 최혜영 씨가 운영하는 까마귀픽처스에서 소규모로 작품 배급을 도와주고 있어요. 어떤 식으로든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찾아가고 싶어요. 그래서 고민도 많아요. 영화제 이곳저곳에 넣어봤지만, 그것도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공동체 상영도 고려해보고 있는데, 오늘 여기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분들과 소통할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 녹취 및 정리 : 이지혜,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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