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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나의 감정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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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DOF 발견과 주목’ 12월 프로그램_<트러스트폴>, <군더더기>, <탈>, GV

‘SIDOF 발견과 주목’ 12월 프로그램_<트러스트폴>, <군더더기>, <탈>, GV

일시
17.12.19(화)
장소
인디스페이스 ( IndieSpace )
진행
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참석
이소정, 배꽃나래(<트러스트폴> 연출), 이가경, 박영완(<탈> 연출), 정재훈(인디다큐페스티발2017 프로그래머)
토크

이도훈

인디다큐페스티발2017 ‘SIDOF 발견과 주목’의 마지막 상영이었습니다. 오늘 상영은 단편 작품들을 묵었는데요, 처음에 상영작이 결정된 다음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과연 관객들이 이 작품들을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일까, 그런 고민을 하면서 다시 영화를 보니 오히려 저의 그런 생각 자체가 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보통 영화 장르를 구분하라고 하면 크게 극영화, 실험영화, 다큐멘터리로 나누는 경향이 있는데, 저 역시 그런 도식적인 분류법에 얽매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상 오늘 보신 작품들은 장르적으로 다양한 형식, 양식, 그리고 내용을 실험하고 있고 또 그 각각을 교차 횡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들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첫 질문이자 공통질문으로 처음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묻고 싶습니다. <탈>을 연출한 이가경, 박영완 감독님부터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가경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제 기억과 감정들을 노트에 적었어요. 그리고 박영완 감독과 만나서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하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업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영화제에 내겠다는 것보다는 가족들이 소장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려고 했어요. 영화 속에는 연출된 부분도 있지만, 다큐멘터리처럼 작업한 부분도 있어요. 박영완 감독이 촬영을 도와주었고, 영화 마지막 부분에 실제 장례식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어떻게 하면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아이디어나 법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박영완

처음에 이가경 감독이 저에게 글을 길게 써서 보내줬는데, 저는 극영화만 하던 사람이라 내가 이걸 해도 될까 고민하면서 찍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점점 욕심이 생겼고. 그냥 기록만 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만들자, 그러면서 지금 여러분들이 보신 작품으로 발전했어요.

이도훈

영화의 제목이 국문으로는 ‘탈’이고 영문으로는 ‘Escape’입니다. 전자가 가면의 뜻을 가지고 있고 후자는 도피의 뜻을 가지고 있어요. 두 제목이 다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가경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제가 처음에는 빨간색 립스팁을 바르고 나중에 가면 보라색 립스틱을 발라요. 그런데 그런 부분들에서도 제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탈을 쓰고 생활한다는 의미에서 ‘탈’이라고 제목을 붙였고, 슬픈 감정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ESCAPE’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이도훈

<트러스트폴>을 만든 두 감독님께도 영화의 첫 시작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소정

학교 워크숍 시간에 만든 작품입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먼저 생각하고 만든 것은 아니고, 형식적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영상으로 편지를 만들어서 주고받는 형식으로 하고 싶었는데, 편지라는 게 사적인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평소에도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는데, 그런 걸 영상으로 표현해 볼 생각으로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용과 형식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이도훈

정재훈 감독님은 인디다큐페스티발2017 프로그래머로 참여하셨잖아요. 이 네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정재훈

다큐멘터리 심사는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담이 많았고, 영화를 보면서 그 부담이 더 가중됐어요. 그 이유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영화, 그리고 사회적 이슈를 건네는 척하면서 남성적인 자의식을 뿜어내는 영화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이 자기 연민을 표출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들이 주를 이루었죠. 그게 제가 심사하는 데 있어서 제일 먼저 걸러내자고 생각한 영화들이었고, 그러다 보니 돋보였던 게 오늘 보신 네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저 없이 뽑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도훈

<탈>, <트러스트폴>에 관한 구체적인 감상평도 부탁드릴게요.

정재훈

심사 볼 때를 떠올려 보면, <탈>은 보자마자 ‘이게 뭐지, 극영화인가?’라면서 봤어요. 클리셰적인 상황들이 있고 그런 게 또 지속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극영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이가경 감독님이 영화 속에서 “아빠”하고 부를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에 푸티지들이 전개되는 방식도 흥미로웠어요. <트러스트폴>은 처음 볼 때 영화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다가 마지막에 설득되었던 게 “고양이가 흘린 물이 빨간 수건으로 바뀐다.”는 내레이션이 나올 때였어요. 그게 저한테 담담하게 다가왔어요.

이도훈

정재훈 감독님께서 <탈>에는 극영화적인 클리셰가 있다고 지적해주셨어요. 실제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글을 이가경 감독님이 쓰셨고, 또 직접 연기도 하셨잖아요. 영화 속 감독님의 행동, 표정, 말 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기인지 다큐멘터리적으로 기록된 것인지 그 경계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가경

사람들이 봤을 때 극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찍었을 때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반년도 안 된 상황이어서 연출된 장면도 있지만 울거나 이런 장면들에서 가짜로 울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너무 슬펐거든요.

박영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에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하고 촬영을 했어요. 이 친구가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을 기록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조금 더 큰 틀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이가경 감독이 그때 당시의 자신의 표정을 궁금해할 것 같았어요. 최초 편집본은 40분 정도의 길이로 완성되었는데, 그 버전은 가족들이랑 볼 수 있도록 주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영상을 따로 편집했어요.

이도훈

<트러스트폴>은 여러 가지 퍼포먼스가 나오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골목길에서 무언가를 주워서 신발 안에 넣는 장면이었어요. 그게 두 번 정도 반복되는데, 처음에는 압정을 주워서 넣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두 번째 장면에서는 뭘 넣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소정

그건 병뚜껑이었어요. 뭔가 뾰쪽한 것을 신발 안에 넣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퍼포먼스가 들어가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자면, 배꽃나래 감독과 영화 속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일종의 초상화 같은 영상을 만들어서 교환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제가 나오는 장면에서 배꽃나래 감독의 목소리가 깔리는 것은 저에 대한 이 친구의 생각이 반영된 거고, 그 반대의 상황은 이 친구에 대한 저의 생각이 반영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정재훈

<탈>에서 어항을 보는 장면이 자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처럼 나오잖아요. 마지막 부분에서 강가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장면도 그렇고.

이가경

아빠가 열심히 기르던 물고기들이 있었고, 그 물고기들이 새끼를 낳았어요. 제게 동생이 세 명이 있거든요. 아버지를 여윈 저와 제 동생들의 처지가 그 물고기들에게 이입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집에 가면 항상 어항을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 장면을 넣었어요. 강가가 나오는 장면은 팔당댐 쪽에서 찍은 거예요. 제가 답답하거나 그러면 드라이브 삼아 자주 가는 곳이고 거기서 소리도 지르고 그래요.

이도훈

생각해보니 <탈>에는 비, 어항, 댐처럼 물과 관련된 이미지가 많아요.

박영완

많은 분량을 찍어놓고 그것 조각들을 맞춰가면서 완성한 거라서 그런지 연출적인 의도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또 기록 영상에 가깝게 찍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의도가 강했다고 말하기 힘들어요. 마지막에 아버지가 홈비디오 카메라로 찍어준 영상이나 장례식 장면을 놓고 이가경 감독은 넣지 말자고 했었는데, 편집하면서 보니 꼭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그 부분을 놓고 이가경 감독과 의견 충돌도 조금 있었어요.

이도훈

<트러스트폴>은 화면 분할을 반복적으로 활용합니다. 평소 프레임을 구성하거나 프레임 안에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었나요?

이소정

원래 그런 걸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두 사람이 같이 보내온 시간을 한 사람의 시간으로 통합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지나온 시간이나 관계를 복기해보고 떠올려보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분할 화면이 통합되지 않는 시선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이미지 형식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1

영화 재밌게 잘 봤습니다. <트러스트폴>을 보면 이 영화를 “서로에게 남은 질문”이라고 말합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서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의 형태로 남아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이도훈

영화 시작과 동시에 두 사람이 얼마나 사귀었고,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는지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둘은 서로에게 질문으로 남아 있다고 정리합니다. 이어서 그 질문에 대한 내레이션이 계속 나옵니다. 그 내레이션에 ‘여전히’라는 부사가 많이 쓰였어요. 그건 과거형이기도 하지만 현재진행형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던질 질문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소정

거기서 질문은 말 그대로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고, 이해받을 수가 없는 그런 게 계속되었어요. 어떤 관계를 시작할 때도 질문에서 시작하잖아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알고 싶다. 모든 관계는 그런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거나 마무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 같아요. 관계라는 것이 끝난다고 해서 정말로 끝나는 것인가. 그리고 영화를 만든 지 일 년이 넘었어요. 올해 초에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첫 상영을 하고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마다 보는데, 항상 관계는 바뀌고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반복하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데, 그런 경험이 신기했어요. 질문은 여전히 있는 남아 있는 거 같아요. 질문이 떠오르는 빈도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고 또 앞으로도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이도훈

<트러스트폴>이 말하는 질문이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는 <탈>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부재한 대상과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표현하면서 그 거리감을 최대한 좁혀보려는 시도였던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영화 속에 나오는 손도장이 그러한 것 같아요.

이가경

그 손은 아버지의 손(도장)입니다. 그 손도장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났고, 아버지 손과 맞닿는다는 느낌으로 거기에 손을 대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손도장 위에 손을 올리는 것은 삼촌이 대신해주셨어요. 그리고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에 제가 냄새에 엄청 집착했어요. 평소 담배를 싫어했는데, 아버지가 사용하던 재떨이를 맨날 들고 다니면서 냄새를 맡고, 옷장을 열어서 아버지 옷 냄새를 맡았어요.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 옷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싶은 마음에 옷장에 방향제를 엄청 넣어놨는데, 그것 때문에 아버지 냄새가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방향제를 다 버리고, 엄마랑 싸우고 그랬어요.

관객 2

두 편의 영화 모두 잘 봤습니다. 그리고 영화 보면서 네 편의 공통점이 보였어요.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애도가 조금씩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비서사적이고, 특정한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까 그 의도가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애도가 어떤 것에 대한 것인지 생각해봤어요.

이가경

저는 그 당시에 이 영화를 만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그리울 때 영상을 자주 보기도 하고, 저를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것 같아요.

이도훈

정리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들께 한 말씀씩 부탁드리고 오늘 이 자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영완

앞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은 또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극영화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작업으로 이가경 배우와 단편을 찍을 것 같습니다.

이가경

영화를 다시 연출하거나 만들 계획은 없는데, 제가 본업이 배우이다 보니 단편 작업도 많이 해둔 게 있고, 또 상업 영화도 몇 개 찍고 있어요. 분량은 적지만 혹시 제가 출연한 영화를 보시게 된다면, 얼굴을 알아보고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소정

졸업 작품을 구상 중입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형식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올 한 해 동안 그쪽으로 공부를 하면서 작품을 구체화해나갈 예정입니다. 다음 영화에서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보기 위해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또, 아직 모호한 상태이긴 하지만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도 구상해보고 싶어요.

배꽃나래

저도 졸업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직 무엇을 찍을 것인지 고민 중입니다.

정재훈

오늘 추운 날씨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도훈

오늘 수고해주신 다섯 감독님들께 박수 보내주시길 바라며, 인디다큐페스티발 정기상영회 ‘SIDOF 발견과 주목’ 관객과의 대화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녹취 및 정리 : 이지혜, 이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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