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8(목) ~ 06.03(수)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인디다큐페스티발

> 정기상영회 > SIDOF 발견과 주목

      SIDOF 발견과 주목      

도시 (재)개발의 기억들

정기상영회 상세정보

  • ‘SIDOF 발견과 주목’ 10월 프로그램_<당산>, <일>, <표류인> GV

‘SIDOF 발견과 주목’ 10월 프로그램_<당산>, <일>, <표류인> GV

일시
18.10.16(화)
장소
인디스페이스 ( IndieSpace )
진행
이도훈(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참석
백고운(<표류인> 연출), 박수현(<일> 연출), 김건희(<당산> 연출)
토크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에서 (재)개발의 풍경은 익숙한 일상이다. 경제논리가 삶의 논리를 압도하는 이 공간에서 삶은 정주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부단히 부유한다. <당산>, <일>, <표류인>은 이 만연한 ‘장소 상실’이라는 삶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고 성찰하는 작품들이다. 세 영화는 각각 동시대 서울의 다른 공간들(<당산>의 ‘당산동’, <일>의 ‘상도4동’, <표류인>의 ‘서촌과 광화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개발과 관련하여 각각 서로 다른 시간성을 담고 있다. <당산>에서 ‘당산동’의 (재)개발이 과거의 사건이라면, <일>에서의 그것은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는 파괴이며, <표류인>에서의 그것은 불길하게 다가오는 미래다. 오랜 만에 마주한 ‘낯선 풍경’과 마주하며 갖게 된 불안에서 시작된 <당산>의 흔적 찾기(또는, 기억의 재구성) 여정은 먼 일제시대로까지 연장되고, 서울이라는 낯선 타향이 가져다주는 불안에서 시작된 <일>과 <표류인>의 기억 만들기는 각각 ‘철거용역 알바’를 해야 했던 청년의 기억 및 광화문 광장의 ‘촛불’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불안이라는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해서 공적인 기억의 재구성을 향해 나아가는 세 영화의 윤리적 방향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수행성’이라는 공통적인 미학적 방법론을 경유하고 있다는 공통점 또한 갖고 있다. 10월 ‘SIDOF 발견과 주목’에서 상영되는 이 영화들은, 이에 앞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도시 재개발 다큐멘터리 기획전으로 진행되는 ‘인디다큐 시간여행’ 프로그램의 연장이자 번외편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같은 테마로 열리는 이 두 개의 상영회가 독립다큐멘터리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예감하는 소중한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도훈

우선 세 분 감독님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관객분들께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백고운

안녕하세요 <표류인> 만든 백고운 이라고 합니다.

박수현

네 저는 <일>을 만든 박수현입니다. 안녕하세요.

김건희

저는 <당산> 연출한 김건희라고 합니다.

이도훈

네 인디다큐페스티발2018 발견과 주목 10월 상영에서는 도시를 키워드로 한 세 작품을 선정했고 세 편을 보셨는데요, 진행 순서는 제가 간단하게 감독님들께 공통적인 질문 한두 가지 드리고 나서 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려서 관객분들의 감상평과 질문들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 전에 이 세 편을 보고 나서 제 개인적인 감상과 이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을 지적하고 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일단 보시는 것처럼 표면적으로 이 세 편의 작품은 모두 도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고요. 물론 구체적인 지리와 장소는 각각 다르긴 하지만 도시에 대한 사유 혹은 도시에 대한 기억, 도시에 대한 역사 그리고 도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문제점을 각각 짚어 보는 작품들입니다. 다큐멘터리적인 접근법으로 보자면, 일단 목소리를 기초한 방법을 써서 도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도출해 낸다는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그뿐만이 아니라 각 영화에서 보시면 자막을 쓴다거나 내레이션을 넣는다거나 인터뷰를 시도한다거나 또는 특정 장소에 들어가서 사건을 발생시키는 퍼포먼스를 쓴다는 점에서 때로는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서 긴장을 발생시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이 세 편의 작품들이 좀 더 에세이적인 영화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공통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세 영화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어떤 불안, 공포, 두려움, 떨림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단순히 감정을 표출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 세 편의 영화가 어떤 정치, 경제, 문화적인 상황 내에서 각자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과도기적 상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은 웅크리고 있는 상태에서 다음으로의 도약을 준비한다는 뜻으로써 어쩌면 이것이 더 큰 정치적인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태도가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관객분들께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각 영화를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일단 <표류인> 백고운 감독님께 영화에서 보면 지리적으로 더 쉽게 서울 서촌의 배경을 담고 있는데, 굉장히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셨습니다. 어떻게 서울의 서촌을 소재, 테마로 잡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백고운

저는 이 작품이 처음 만든 다큐이고요, 저 당시에는 굉장히 스스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있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앞뒤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상태였어요. 본래는 서울살이를 다른 공간에서 해 왔다가 이쪽으로 들어왔는데 ‘4~5년 동안 여기서 나는 뭘 했지? 이 좋은 공간에서 나는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라는 생각이 저를 굉장히 무기력하게 만들었었고, 그때 주변 사회적으로는 촛불집회가 있던 시기이다 보니까 무기력한 나와 다르게 사회는 힘차게 굴러가는 중인데, 거기에서 느껴지는 괴리가 있었던 것 같아요. 무기력한 상태를 어떻게든 풀어내자는 생각이 있어서 다큐멘터리 수업을 들으면서 수료작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도훈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은 아무래도 내레이션과 자막이 될 것 같은데, 그 내레이션과 자막의 중심이 되는 게 특이하게도 <반지의 제왕>이거든요, 어떤 사연으로 이 영화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캐릭터 때문인지 아니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내러티브 라인 때문인 건지.

백고운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매끄럽지는 않아요. 애초에 연출 의도나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주 뚜렷하지는 않았었고, 솔직히 우선은 여러 가지 촬영을 한 이후에 편집과정을 나름대로 고심하다 보니 내가 한 가지의 궤를 설정하지 않은 채로 계속 촬영을 하고 있구나를 어느 순간 알게 되었는데, 그때 우연히 책상 위에 <반지의 제왕>이 있었어요. 뭔가 하기 싫을 때 긴 소설 읽거나 그럴 때 있잖아요.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반지의 제왕>이고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가져와서 맞물리게 되면 나의 상황이 잘 전달되지 않을까 라는 우연적이고 얄팍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이도훈

<반지의 제왕>은 우연적으로 들어왔지만, 이 영화를 완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으로 박수현 감독님, <일>을 보면 영상과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인지 정보가 사실상 없다고도 볼 수 있는데, 실제 어디서 촬영된 것이며, 어떻게 영화가 시작되었는지.

박수현

일단 등장하는 장소는 딱 세 군데가 있는데, 저 친구의 상도4동 거기가 초록색 화단이 나타나는 곳이고요, 그리고 주로 집회 현장이 나타나는 곳은 옥바라지 골목 이었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곳은 한강대교예요. 저는 부산에서 한 번도 이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재개발이라고 하는 주제가 낯설었어요. 근데 서울에 올라와서 생활하면서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던 차에 제가 오래 살았던 집이 없어지고 새로 살게 되었던 집도 타워팰리스가 생긴다고 전체 동네가 다 없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에서 부모님이 저항을 못 하고 나오셔야 했어요. 그래서 재개발이라는 주제를 마음에 품고 이걸로 뭔가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이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도훈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재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계속 다루었었죠, 소재 자체가 매혹적이라기 보다는 시대적인 국면과 상황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일이 반복되는 안타까운 상황인데, 그렇기 때문에 진부한 소재와 주제를 다르게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목소리는 분명 내부자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말하자면 용역체겠죠, 시선 자체는 외부자의 시선이 나타나면서 그 두 가지가 약간 긴장감을 형성하고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는 게 매력적이었는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영화 크레딧에 괄호로 되어있던 남자분, 그러니까 목소리로 출연을 하신 그분을 만나게 되는 과정이 궁금하거든요, 아까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면 평소에 알던 지인이라기보다는 우연으로 만났다고 하셨는데 그 과정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지.

박수현

원래는 제가 밀려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밀려나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녹번동에 있는 절이 1950년대부터 쭉 있었던 절인데, 그 절만 남겨두고 그 주변이 다 밀린 사건이 있었거든요. 원래 거기를 찍으려고 했는데 부산에 갔다가 올라왔더니 없어졌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찍어야 할 대상이 사라지고 망연자실하던 차에 친구를 만나서 “재개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찍으려고 한 곳이 없어졌어” 이랬더니 친구가 자기 친구 중에 술만 마시면 이 얘기를 힘겹게 하는 친구가 있다.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그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도훈

한 번의 실패와 한 번의 우연적인 만남을 통해서 작품이 완성되었네요. 그럼 다음으로 <당산>을 만드신 김건희 감독님께 여쭙고 싶은데, 비슷하게 사적인 기록으로부터 시작해서 조금 더 공적인 기억을 씨줄 날줄 엮는 식의 작업을 하셨어요. 영화에서 보면 1910~1920년대 당산부터 해서 현재까지의 당산의 모습과 기억을 본인과 실제 장소들을 통해 불러내서 종합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영화를 만들게 되신 건지.

김건희

영화에서도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저는 이제는 당산에서 살고 있지 않고 떠나 온 지 6년 됐는데요, 떠나고 나서부터 제가 살았던 당산이 그리웠고 그런 감정이 가장 컸고, 그 그리움의 근원을 탐구해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당산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리움의 정서보다 불안의 정서가 더 많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래서 그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생각하다가 제 기억 속에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공장들이었거든요, 그 공장들이 주는 정서가 굉장히 강하게 남아있었는데, 그 근원이 궁금해서 당산동 역사를 찾아보다가 작업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도훈

영화의 형식이 여러 가지 쓰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부터 아예 이 형식 그대로 여러 가지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를 결합해서 당산의 모습을 조합하는 길을 잡고 가신 것인지, 아니면 자료들을 편집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파운드 푸티지 형식이 나오게 된 것인지.

김건희

그거는 취향이 큰 것 같고요. 푸티지와 기록을 찾아보는 일들을 되게 좋아해서. 그 기록의 사진이 주는 영향이 되게 커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정서들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도훈

듣다 보니 제가 이 영화들의 공통점을 제 나름대로 정리했는데, 모두 다 어딘가로부터 밀려나거나 밀려날 위협을 받는 '실향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100년 전쯤에 게오르크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실향민’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요, 그게 여전히 적용 가능한 단어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려서 관객분들께 질문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멘트나 영화에 대해서 구체적인 질문 있으신 분들은 손들어 주시면 마이크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관객 1

영화 너무 잘 봤고요, 저도 도시와 재개발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공감하면서 볼 수 있었고요.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은 <당산>의 김건희 감독님께 드리고 싶은데, 영화가 사진과 영상을 결합한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그 중에 흑백의 이미지들도 있고 컬러인 이미지들도 있잖아요, 그렇게 두 가지의 컬러를 섞어서 쓰신 이유와 사진과 영상을 사용할 때 이것을 컬러로 할지 흑백으로 할지 결정하시게 된 기준이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김건희

일단은 컬러와 흑백을 쓴 이유는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이유도 있는데요, 흑백의 경우에는 유기된 것들이나 시간이 멈춰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다 흑백으로 처리를 했고, 흑백 사진은 큰 의도는 아니었는데요, 애초에 촬영을 흑백으로 했어요, 현재의 당산에서 굉장히 이질적이거나 이미 더는 사용되지 않는 건물과 풍경을 찍는 거라서 흑백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고 푸티지는 어쩔 수 없이 원본이 흑백이어서 그렇습니다.

이도훈

제가 단계별로 나누어서 구성했던 것은, 구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추상적인 거였어요. 그 단계들이 현실을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색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백고운 감독님의 영화에서도 흑백이 사용되고 있는데, <당산> 영화를 보면 장롱이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는 통로이고, 그걸 들어갔다 나왔을 때 뭔가 바뀌는 것들이 있었고 이 영화에서는 여러 가지 통로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표류인> 백고운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자막을 쓰기도 하고, 내레이션을 쓰기도 하고, 혹은 카메라를 마주 보는 시선에 대해서 톤과 분위기가 계속 바뀌는데, 똑같은 질문을 받아서 흑과 백을 배열하신 기준이 있다면.

백고운

우선 흑백으로 편집한 부분이 앞과 뒷부분에 나오고 가운데 부분은 컬러로 진행하는데, 앞뒤에 나오는 내레이션 같은 경우에는 제가 스스로 성찰을 하는 과정을 내레이션으로 놓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의도로 진행을 했어요. 쉽게 말하면 직접적인 부분들은 흑백으로 처리했고, 스스로 이야기를 진행해서 과정을 겪고 결과로 나아가는 이야기 서사 구조를 드러내고 싶은 부분을 컬러로 진행하게 됐어요.

이도훈

영화가 구조적으로 보면, 출발점과 끝 지점이 맞물리는 듯한 느낌이 나거든요, 수사적으로 말해서 영화의 앞부분 흑백이 시작하는 부분을 어둠이라고 친다면 중간 지점이 낮을 통과해서 다시 어둠으로 돌아오는 순환구조로 이해해봐도 될까요. 왜냐하면 촛불 집회 나오는 장면도 거의 밤 장면이었을 테니까.

백고운

네 아마 그렇게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편집을 진행하다 보니 애초에 어떤 의도를 갖고 했다기보다는 편집을 하면서 생각이 변하고 편집하는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굉장히 의미가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네가 지금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꺼내놓고 이 영화가 어떻게 진행이 됐고 네가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지를 포장을 해서 보여주고 네가 촛불 집회를 나가게 된 부분을 다시 한번 현실로 돌아와서 보자고.

관객 2

저도 영화 재미있게 잘 봤고요, 다시 한번 <당산>의 김건희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처음에 당산 은행나무부터 시작해서 그 지역에 있어서 연대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한 지역에 어린이 무덤이 있었다든가 조선 피혁주식회사와 나중에 한국전쟁 시기 포탄 발사까지.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읽어 내셔서 재미있게 봤는데요, 혹시 한국 전쟁 이후에 감독님께서 당산에서 생활하셨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 사이에서 좀 더 추가하고 싶은 지역의 에피소드를 발견하시지는 않았나요?

김건희

일단 1970~1980년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첫 공장들 도심으로 밖으로 이전하는 일들이 생겨나면서 그때부터 훨씬 더 당산동의 공장이 더 많이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었는데, 1970~1980년대 이후 공장들이 모두 모시 밖으로 밀려나면서 한두 군데가 남고 나머지는 다 아파트나 상가로 재개발이 됐었는데요, 그때 이후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의도적으로 뺐어요. 그 외에 제가 관심 있었던 몇몇 공장이 있었는데요, 그 공장도 지금은 다 팔렸더라고요. 저는 부동산 투기로 굉장히 과열되고 있는 서울에서 부지가 놀고 있다는 것이 늘 궁금했고, 후반부에 폐허가 된 공장이 마침내 팔렸는데 그전까지 공장이 왜 안 팔리고 있었는지를 추적했었어요. 근데 찾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그 에피소드는 넣지 못했습니다.

관객 3

세 분 영화 다 너무 잘 봤고요, 저는 <일>을 연출하신 박수현 감독님께 질문드립니다. 영화 곳곳에 공사 현장 내부에서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이 행해지고 카메라 안에 담기는데 그런 장면들을 어떤 계기와 의도에서 담게 되셨고, 연출적으로 어떻게 작용하기를 바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도훈

이 영화에서 퍼포먼스를 집어넣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박수현

일단은 제가 이 작업을 하면서 제일 먼저 했던 작업은 이 친구의 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한 거였어요. 이 친구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게 굉장히 중요했고 그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많이 와닿았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집이 부서져도 계속 들어간다는 얘기였거든요. 저는 그런 경험이 없지만 대신 그런 것들을 전달하면서 윤리적으로 내가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를 진행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원래는 촬영하려고 거기 갔던 것이 아니고 한번 있어 보려고 갔어요. 제가 저기서 3~4일 정도 잠을 잤었는데 첫 번째 날에는 카메라를 아예 들고 가지 않았고, 갔을 때 구멍이 있었고 그 구멍 안으로 들여다본 시선 자체가 이 친구가 들여다본 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습니다. 그 외부적인 시선이 카메라와 겹치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거기를 직접 들어가서 겪어보고 싶었지만, 그 침투라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카메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관객 4

세 편의 영화 다 너무 잘 봤고요, 질문은 백고운 감독님께 드리고 싶은데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서 사실 초반 부분에는 빛이나 어둠의 추상적인 개념들이 사실 저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았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게 마지막으로 넘어가면서 새롭게 들어오는 빛을 어떤 촛불의 광장으로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앞에서 제시되었던 빛이나 어둠의 개념보다는 굉장히 구체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앞에서 내가 해석했던 개념들을 바꾸어야 하는가 라는 고민도 했는데, 그것을 의도하신 것인지, 마지막에 구체적 의미가 포함된 빛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박수현

표면적인 소재 자체는 젠트리피케이션인데, 내가 소박하게 살고자 했던 이곳이 외부의 강력한 유입들로 인해서 분위기가 바뀌고 이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의 생활패턴을 바꾸는 그런 것들을 어둠의 세력이라고 단정 지어서 주인공인 나를 괴롭히는 안타고니스를 강력하게 선정해두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나 자신을 책 속의 이야기 화자이자 주인공으로 두고 나의 현실을 되돌아봤을 때, 나는 다른 공간에 가지 않았지만, 촛불의 물결이 나에게로 다가오는 듯한, 모두를 환영하고 싶은 마음이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무기력에 비하면 너무나 크고 압도적인 힘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깨달을 수 있었던 게 나는 외부의 세력에 의해서 기력이 빠져 있었지만 어쨌든 나를 굴러가게 하는 것은 나의 힘이다, 촛불이 왔다고 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비판적인 마음이 습관적으로 감추어질 뿐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결이 약간 다르다고 생각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이도훈

영화를 쭉 보다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드는데, 하나는 지적해 주신 것처럼 빛과 어둠의 변증법 때문에 결국 빛이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는 생각이고, 다른 식으로 보자면 사실 지리적으로도 그렇지만 경복궁역 뒤편에 있는 서촌에 있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행렬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그 사람들의 흐름이 경복궁 쪽에 있는 촛불 집회의 현장으로 물결처럼 쭉 흘러간다는 생각이 드는데, 희한하게도 감독님이 그 가운데 서 계시는 장면이 한번 나오거든요. 그때 선뜻 그 대열에 바로 합류를 하지 않고 그들을 등지고 있거나 혹은 그들을 바라보는 지점에서 결국은 저 큰 흐름에 같이 합류하는 것도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서 합류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라지지 않을까. 그런 점을 조금 느낄 수 있어서 후반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관객 5

저는 백고운 감독님과 김건희 감독님께 각각 질문드리고 싶은데, 두 분이 인용문을 쓰셨기 때문에 물어보고 싶었어요. <표류인>은 인서트 컷도 그렇고 인용문과 내레이션이 신화적인 부분들이 있고 서정적인 부분도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봤고, <반지의 제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주의가 불러일으킨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를 일깨워주는 동화 같은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촛불 집회의 빛을 보여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큰 물줄기, 물결, 보이지 않는 질서 이런 부분을 설명하세요. 본인의 분명한 임무나 방향을 가지고 걷기보다는, 그게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보이지 않는 흐름에 휘말려 들어간다는 충돌의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인용구와 내레이션의 충돌을 의도하셨는지,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면 약간 모순되는 지점을 어떻게 설명해 주실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당산>의 김건희 감독님은 본인의 불안한 꿈으로부터 시작된 여정임을 분명히 밝히고 가시는 부분도 그렇고 어떤 프로이트적인 정신 분석 작업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도시의 정신과 정체성 속에 고조된 과거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당산에 대한 정신 분석 작업 같기도 하고 꿈 작업 같기도 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무의식 속에 있던 감독님의 불안이 영화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의식으로 끌어 올려진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불안이 해소되는 부분이 있었는지. 내레이션으로는 분명히 공장의 행방을 쫓으면서 어느 정도 불안이 일단락된 것처럼 말씀을하시는데 저는 그 부분이 깨끗하게 와닿지는 않았거든요. 그리고 아우스터리츠 소설을 인용하셨다는 것을 엔딩 크레딧을 보고 알았는데, 아우스터리츠가 홀러코스트 1.5세대의 기억을 중심으로 서술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아우스터리츠를 선택하시고 해당 구절을 거기에 배치하신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요.

 

백고운

우선 소설은 명확하죠.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장면들을 상상하게 되고 그들의 여정을 계속해서 따라가는데, 제가 특별한 구문을 적어서 넣었을 때는 얘네가 지금 뭘 하고 있고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굉장히 명확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서사 안에 넣었을 때, 나의 무기력한 증세나 고통받는 기분 이런 불명확한 것을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은 게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가시적으로 볼 수 있으면 하는 의도에서 활자로 넣었던 것 같고, 그렇지만 다들 의문스럽게 질문을 많이 하세요. “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왜 촛불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때 제 의식 흐름이 그랬던 건데 어쨌든 저를 제대로 관찰을 하고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지점이 굉장히 필요했거든요. 그게 노력해도 오지 않을 때, 책의 구절들을 통해서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책 속에서는 명확하게 나오는 선과 악 그런 것과 다르게 ‘나는 흘러가고 있지만 어쨌든 불명확한 것에 의해서 무기력에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어쨌든 나아가자’라는 성찰 뒤에 오는 게 촛불 물결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불명확한 의미를 멀미로 표현했는데, 어쨌든 멀미는 끊임없이 이어지지는 않잖아요, 멀미는 어느 순간 항해를 하다가 멈추거나 아니면 내가 항해에 적응하거나 어쨌든 멎게 되는 거기 때문에, 이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언제 끊을 것이냐는 나의 의지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이도훈

<당산>에 대해서 굉장히 심오한 질문이 들어왔는데, 프로이트의 말처럼 “억압된 것은 회귀한다”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불안이 해소가 되었는지.

김건희

일단은 저는 사실 이 작업을 한 가장 큰 의도 중 하나는 저의 불안을 알기 위해서였고요, 그 흔적들을 쫓아가다 보면 어떤 진실에 도약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감정의 근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작업하면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아까 말씀해주셨지만, 이 작업을 계속하면서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공적인 거대한 기업, 켜켜이 쌓여있는 산들과 기억들이 저에게 크게 다가와서 그것들 요소 하나하나가 저의 불안을 만들지 않았나 싶기도 했었고요, 물론 공적인 것 외에도 사적인 저의 성장 배경에서도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나를 둘러싼 공간과 나의 삶의 요소들이 영향을 미쳤구나. 이걸 아는 정도가 저에게는 영화를 만들면서 얻을 수 있었던 개인적인 것들이고요. 불안이 해소됐다는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제발트는 홀러코스트를 주제로 한 소설이고, 제발트가 어렸을 때 기억이 없는데 그 기억을 쫓아가는 내용인데요, 소설이 사진과 서술하는 방식으로만 나타나거든요, 이 주인공이 현장을 찾아가면서 자신의 과거를 쫓아가는 방식이 저는 되게 좋았고, 제발트의 건조한 문체에 제 취향이 있기도 해서 그 텍스트를 선택했습니다.

 

 

이도훈

감독님들께서는 앞으로의 계획과 혹시 오늘 못하신 이야기가 있으시면 한마디씩 해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백고운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것은 항상 생각하지만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떤 수업을 들어야 수료작을 찍을 수 있을까. 우선은 계속 관심이 가는 것은 을지로와 세운상가에요. 저는 인천에 살다가 20대 중반에 서울에 살고 싶어서 왔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문제와 마주하고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런 와중에 세운상가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쫓아 몇 번 다니다 보니 정말 깊이 관심을 갖고 볼 수 있는 곳이고 어떤 매력이 있길래 요즘 젊은 사람들이 찾아가는지 궁금해져서 계속 관심이 있습니다.

박수현

저는 사실 제 자체의 목소리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라서 인터뷰 중간에 겹치는 것도 강박적으로 잘라낼 만큼 싫어하는데, 다음에는 제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아요. 이상하게 겨울에만 작업하게 돼서 여름에는 쉬고, 아마 겨울에 뭔가를 찍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건희

1997년 IMF 이후의 청년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를 공동 작업하고 있는데요, 태국에서 시작해서 태국 청년과 한국 청년을 같이 엮어서 만든 작품이고 지금 같이 장편 작업 시작 하는데 그건 아마 더 이상 제 얘기는 안 할 거구요, 다른 사람을 찍어보고 싶기도 하고 영등포에 지속적인 관심이 있어서 영등포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과 함께 거기서 일 했던 사람들과 관련해서 작업하려고 합니다.

이도훈

말씀 들어보니 작품의 방향과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다시 한번 만났으면 좋겠고,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오늘 감독님들이 해주신 말 중에 찍다, 본다, 교감한다는 말을 많이 쓰셨던 것 같아요. 이게 어쩌면 영화적인 경험의 근본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더 못 나눠본 게 아쉽기는 하지만 오늘 끝까지 자리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감독님들께 박수 보내 드리면서 자리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녹취 및 정리 : 장유진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