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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성 노동자의 기억법

정기상영회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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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 시간여행: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기억법’_ 대담

일시
2017. 9. 16(토)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2관 ( Korean Film Archive Cinematheque KOFA Screen2 )
진행
김소희(영화평론가)
참석
김미례, 이혜란 감독
토크

김소희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김소희입니다. 이번 기획전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인디다큐 시간여행: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기억법’이라는 주제의 기획전입니다. 2010년 이후에 과거 투쟁을 기억하는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요, 회고 격의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동과 투쟁을 다룬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회고의 의미가 단지 과거에 대한 반추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외박> 연출하신 김미례 감독님, <우리들은 정의파다>와 <평행선> 연출하신 이혜란 감독님 자리해주셨습니다.

이혜란

<우리들은 정의파다>와 <평행선> 연출한 이혜란입니다. <평행선>을 2000년에 완성했는데, 지금 2017년이잖아요. 네 번째 상영이거든요.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영화 함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미례

<외박>을 만든 김미례입니다. 이혜란 감독님이 <평행선>을 만들 때, 제가 다큐멘터리라는 걸 한다고 ‘희망’(노동자영상사업단 희망)을 찾아가서 자문을 구했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네요. 재밌게 봤던 작품인데, 네 번밖에 상영되지 않았다고 하니 아쉽고요. <외박>은 다행스럽게 많이 상영되고, 이야기가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평행선>이나 <외박>이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평행선> 같은 작품이 더 많이 이야기되면 좋겠습니다.

김소희

‘노동자영상사업단 희망’에서 제작한 <평행선>은 아직 여성 노동 다큐멘터리가 척박하던 때에 제작된 다큐멘터리입니다. <우리들은 정의파다>는 ‘여성영상집단 움’에서 동일방직복직추진위원회를 만들면서 제작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리들은 정의파다> 제작 일지에서 ‘여성의 주체 쓰기’라는 말씀을 많이 언급하셨던데요. 그것이 절박했던 이유는 결국 <평행선>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와 관련한 두 작품의 제작 계기를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혜란

저는 1996년도부터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고, 96~ 97년도에 노동법 개정 투쟁이 있었어요. 97년도 자체가 IMF 상황이어서, 그 당시에 정리해고를 법제화시키는 투쟁들을 진행하는 상황이었고 98년도에 정리해고 반대 투쟁을 했던 것이 <평행선>의 배경이에요. 저는 96년도에 영상을 시작하면서 영상으로 노동운동을 해보겠다는 굉장히 큰 꿈을 가지고 시골에서 올라왔거든요. ‘영상으로 노동운동에 복무할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희망’에서 노동 관련된 다큐멘터리들을 만들었는데, <평행선>을 작업하기 전에는 대기업 남성 사업장 중심의 현장을 주로 촬영했거든요. 대우자동차나 기아자동차,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어마어마한 곳을 촬영했었는데, 그때 당시 한국 노동운동하면, 울산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 앞에서 오토바이 부대들이 빨간 머리띠 메고 쫙 나오는 것이 정석적인 이미지였거든요. 저도 그 그림을 보며 자랐고, 그 그림 안에서 나의 이야기를 찾고 있는 시기였어요. 98년도에 현대자동차의 파업 투쟁을 기록하면서 식당 노동자들을 만나고 다른 고민에 빠졌어요.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98년도 파업 당시에, 파업 주체로서 조합원들의 모든 밥을 해가면서 맨 앞에서 투쟁했었거든요. 36일간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누가 정리해고될 것인가에 대한 소문들이 흉흉하게 돌았어요. 그때 대상이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었거든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식당노동자 144명이 정리해고가 되었고, 동지라고 같이 투쟁했던 사람들이 식당 여성 노동자의 집단 해고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싸워주지 않았으니까요. ‘왜 식당 여성 노동자가 정리해고되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깊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이들이 여성이라서? 늙어서? 아니면 식당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서 희생양이 된 건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내가 꿈꿔왔던 노동운동이라는 부분에 여성이 들어오게 된 거죠. 노동자 안에 여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여성으로서 노동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아요. <평행선>이 98년도 정리해고 이후에 2년 동안 원직 복직 투쟁한 과정을 담았던 이유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주체로서 보여줘야 하고, 그 과정 안에서 여성들이 왜 어떻게 투쟁하는지 꼼꼼히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평행선> 작업을 하고 나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여성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고민했고요. 지금도 오토바이 부대가 강렬하지만,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올해로 30주년이 되었어요. 87년 노동자 대투쟁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분명히 있었을 걸로 생각해요. 그 이미지들, 여성 노동자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제작했고 그 역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면서 실제, 그분들이 70년도에 한국 노동운동 안에 여성 민주노조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들은 정의파다>를 만들었고요. 올해로 이 노동자분들이 해고된 지 40년이 되었거든요. 지금도 동일방직복직추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복직을 원하고 있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는 현재성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소희

김미례 감독님은 <동행- 비정규직 여성에 관한 짧은 보고서>라는 영화를 2002년에 만들면서 작업을 시작하셨는데, 그 이후에는 여성 노동에 제한을 두시기보다는 일용 근로자나 임시직 등 소외된 노동의 전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셨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외박>은 일용직 노동 역시 노동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처럼, 투쟁 역시 일시적일지라도 투쟁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외박>이 전작들과 차별화된다는 평가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만드신 계기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김미례

그 전에는 건설일용노동자, 혹은 레미콘 노동자들을 주로 기록하다가 여성 노동으로 가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인 것 같아요. 이혜란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혜란 감독님이 문제의식을 갖고 작업에 임한다면, 저는 사실 그런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건설 현장에 들어가고 싶은데 어떻게 들어가지? 고민하다 건설노조로 가고, 이 사람들은 무엇으로 싸우나 궁금해서 제가 관심이 가는 대로 찍었고. 그런 것들이 재밌었어요. 저는 카메라를 통해서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많은 걸 배운다고 생각했어요. 건설 시스템이 이렇게 굴러가고 있고, 우리 사회가 이렇게 굴러가고 있었구나. 현장에 가면 대부분 남성 노동자들이잖아요. 계속해서 그분들을 찍다 보니 불편한 지점들이 있었던 거죠. 트럭이나 기사들 방에 들어가면 여성 사진이 있고, 기사 식당에 들어가면 아줌마라고 호칭하고. 여성으로서 일하시는 분들이 계속해서 눈에 띄었는데, 소수화되어 있는 걸 보면서 거슬렀던 거죠. 그래서 다음에는 여성 노동에 대해 찍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가 마침 2007년 5월이었어요. 취재하는 중에 뉴코아나 홈에버에서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또 막무가내로 찾아갔어요. 그분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멋있는 거예요. 무언가 일어날 것 같고. 점거 농성장까지 따라 들어갔는데 일이 커진 거죠. ‘내일이면 나오겠지’하고 주야장천 앉아 있다 보니 그분들이나 저나 아줌마고. 제가 이 길에 접어들지 않았으면 가출해서 세상 속에서 헤매고 다닐 때 아마 저 자리에 있었을 것 같고. 그런 재미로 그들을 기록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관객 1

영화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재현의 권력을 가진 주체로서 주인공들의 입장을 대리 재현하시는 거잖아요. 당사자 입장에서 잘 재현하기 위한 마음가짐이나 신념 같은 것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미례

대상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인 것 같고요. 찍다 보면, 그분들이 해준 이야기나 보여준 태도, 이야기하시면서 바라는 것들이 있어요. 비정규직 여성의 노동 환경이 좋아지면 좋겠고 나 같은 사람들이 이제는 없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시잖아요. 카메라를 들었을 때, 책임감이 생기는 거죠. 그럴 때 내가 이분들을 믿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이 하고자 하는 말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남겨주고 전달해주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하고 촬영합니다.

이혜란

되게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상과의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카메라는 권력일 수 있죠. 일단은 저는, 다큐멘터리를 계속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한데 주관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객관성이라는 해석들 안에 묻혀버리는 이야기들을, 제가 주관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대상과의 관계들 안에서 주인공들이 당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게 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은 영화 안의 형식을 고민하는 거로 생각해요. <우리들은 정의파다>는 구술이라는 인터뷰 방식을 빌렸어요. 여성들에게 가장 편한 방식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기억, 감정의 흐름에 맞춰서 서술하는 거죠. 여성들이 각자가 가진 호흡, 언어, 그 안의 침묵, 눈물들을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끌어낸다기보다는 그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를 잘 포착하려는 고민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다큐멘터리 주인공들과 맺는 시간은 굉장히 길죠. 신뢰를 쌓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를 설득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합의하거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성들이 그런 과정을 갖는 건 색다른 경험이거든요.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깊게 생각하며 길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건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되어요. 카메라가 당신 곁에 있다는 걸 신뢰를 주는 과정이 중요하고요.

김소희

재현의 권력을 이야기하셨는데, 편집의 권력이기도 할 것 같아요. 구성에 대한 질문을 추가로 드리면, <평행선>은 내레이션 없이 중간 자막과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고 그나마도 자막이 거의 없어요. <우리들은 정의파다>는 과거 푸티지 영상과 사진에 내레이션을 넣고 인터뷰를 교차시키는 방식인데, 차이가 있어요. 이렇게 구성한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이혜란

<평행선>은 식당 노동자의 얼굴로 시작하거든요. 실제 144명이 정리해고되었다는 결과 말고는 어떤 투쟁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주체적인 과정을 거쳤는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삶의 과정으로서 여성들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정리해고를 당한 144명의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과 목소리로 영화를 시작했고요. <우리들은 정의파다> 같은 경우에는 영화에 나온 사진들이, 76년부터 동일방직노동자 여성 집행부가 꼼꼼히 찍은 기록들이에요. 저는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랐거든요. 몇 월 며칠 어디라고 기록한 사진첩을 두 개 가지고 오시더라고요. 과거의 자료가 없기 때문에 이 사진을 쓴 게 아니라, 여성들이 기록한 사진이기 때문에 썼어요. 똥물 사진 많이 보셨죠? 동일방직 바로 앞에 사진관이 있거든요. 지금도 아직 있어요. 언니들이 항상 옆으로 찍는 사진들 있잖아요. ‘우정을 기념하며’ 그런 사진들을 찍은 사진관에 가서 이총각 지부장님이 똥물 사건 당시 사진을 찍은 거예요. <우리들은 정의파다>를 못 보셨으면 평생 가도 보기 힘든 사진이거든요. 그 이미지들, 여성들이 있었던 시간과 공간을 복원해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의미를 살려주고 싶었어요.

김소희

<외박>은, 투쟁 다큐멘터리에서 주로 연상되는 눈물이나 처절함 대신에 웃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노동 투쟁 주체의 특성상, 기혼 여성이 투쟁의 주체가 되면서 좀 더 유연해지고, 경직된 기존 투쟁의 이미지를 유연하게 바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노동 다큐멘터리를 찍어 오신 입장에서 그 부분이 감독님에게도 신선하고 독특하셨는지, 아니면 그러한 모습이 일반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미례

매스컴에 의해 조장된 편견입니다. 실제 투쟁의 현장을 가보면, 초반의 분위기와 열기는 정말 뜨겁고 해방 공간이에요. 엄청난 에너지가 분출되거든요. 즐거운 곳이죠. 억압이 있었지만, 억압을 통해서 투쟁을 만들어냈을 땐 발산이 되는 곳이에요. 남성 노동자의 파업장도 그렇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장은 더 재밌었어요. 남성 노동자의 투쟁이 조직되는 방법은 수직적인데, 이곳은 수평적인 느낌이 좋았어요. 눈물은 외부로 보이는 전략이죠. 불쌍해 보여야 언론이 도와준다,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하니까요. 여성 노동자들이 “우리 너무 재밌어요.” 그러면 “그러시면 안 돼요, 저희 도와주시라고 해야 합니다.”하고 이야기들 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또 그런 것도 재밌게 받아들여서 할 줄도 아시고, 그랬던 것 같아요.

관객 2

세 영화 재밌게 봤고요. 많이 울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는데요.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성별화된 노동을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고 그게 주제라고 느껴지는데요. 당사자들이나 노조,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나 혹은 사 측 입장에서는 명확하게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 같아요. 동일방직 같은 경우에는 “치마 두른 것들, 여자들이!” 이런 이야기가 나오거나 외박에서는 “아줌마들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단편적으로는 드러나는데, 당사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더 알고 싶습니다.

이혜란

일단은, <평행선> 같은 경우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아줌마들은 생계 가장이 아니잖아요. 나이도 있잖아요.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 양보할 수 없나?” 밥 짓는 사람과 차 만드는 사람. 밥 짓는 여성과 차 만드는 남성. 이 구도인 거죠. 자기가 하지 않으면 그 노동을 모르고, 일상적으로 매일 먹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노동인지 모르거든요. 밥 짓는 노동에 대한 어떤 폄하. “밥 짓는 게 뭐가 힘들어. 아줌마들은 삼시 세끼 밥 짓는 거로 돈을 저렇게 많이 받아가?” 어떻게 보면 성차별적인 인식 안에 그런 부분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늙음, 그리고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이라는 거죠. 어떻게 보면 대의를 위해서 희생돼도 좋을 그 소수가 여성이 된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노조 식당 인수하고 하청으로 바뀌고 나서 식당 노동자들은 엄청난 경쟁에 시달리거든요. 심지어 노조 위원장이 사장인 상황에서 조합원들에게는 서비스가 나쁘다, 빨리빨리 밥 주라고 욕도 듣고. 이런 대우 자체가 하찮은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구조, 노동 구조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김미례

<외박>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고요. 일단 80만 원 비정규직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회사나 젊은 분들이 많았고요.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많은 주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하나하나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여성 노동자들이 어떻게 힘 있게 저항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때의 경험이 이후에 이런 문제들을 극복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촬영해나갔던 것 같습니다.

관객 3

<우리들은 정의파다>를 보고 질문드리고 싶은데, 2013년에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관련하여 대법원 판결이 났잖아요. 한 번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국가 보상은 안 된다. 그 판결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복직을 원하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이혜란

동일방직복직추진위원회에서 국가배상 소송을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말씀하셨듯이 13년도에, 대법원에서 기각되었어요.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으시면서 생활지원금을 받으신 분들이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국가배상 소송에서 당신들이 생활지원금을 받았으니, 국가에서 더 돈을 주지 못 한다고 판결이 났어요. 그래서 지금은 헌법재판소에 국가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소송이 걸려있는 상태인데. 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분들도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아직도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왜 돌아서지 않았을까요, 40년이 되었는데? 저는 40년이 지나도 돌아갈 수밖에 없는 원점이라고 생각해요. 해고된 이후에 블랙리스트로 인해서 다른 곳에서 노동하지도 못했고, 굉장히 힘든 상황들을 지나왔고.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자신이 옳다는 걸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생각했을 때. 그분들한테는 원직 복직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세상이 나를 버린 느낌, 그 억울함은 그냥 단순히 되돌아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끊임없이 그분들의 가슴을 휘어잡는 태풍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분들에게서 인간적인 고독을 보거든요. 머리 하얗고 눈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방직 기계 돌리려고?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없어요. 눈이 안 보이더라도 내가 그 공장에 들어가서, 내가 사표 쓰고 나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으신 거라고 생각해요.

관객 4

감사와 동지애를 전하고 싶고요. 현대자동차 식당 조합원들의 싸움에 관련한 다큐멘터리 <밥·꽃·양>(연출 임인애, 서은주)을 굉장히 예전에 봤어요. 잊을 수 없는 다큐멘터리였었는데요. <평행선>이 네 번밖에 상영되지 않았다고 해서 또 다른 의미로 가슴이 아프네요. 중간에 제가 노동조합 일을 했었는데, 오늘 다시 현대자동차 식당 조합원들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또 다른 것들이 보이는 거예요. 십몇 년 전에 <밥·꽃·양>을 봤을 때는 깊은 분노를 느끼긴 했지만, 그 사건에 국한되어 있던 분노였고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치부했었는데요.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상 흔한 일이었던 거예요. 97, 98년 이후에 정리해고가 여기저기서 일어났고. 지금은 직영이거나 정규직인 식당이 사실 없는데, 원래는 그러지 않았던 거죠. 현대자동차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걸 지금은 알고 있고. <외박>은 안 보고 미뤄두었던 영화인데요. 계산대 군데군데 누워있는 노동자들을 훑어나갈 때부터 울기 시작하면서 영화를 봤는데, 정신없이 울고 있는데 화면에 제 모습이 지나가서 깜짝 놀랐어요. 그 뒤에 제 개인적인 일들을 겪고 저도 변했기 때문에 막상 이랜드 투쟁 때 보고 느꼈던 것과 지금 그 영상을 보고 느끼는 게 달라서 영상을 기록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그 전에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지만 어설픈 페미니스트였던 것 같고, 지금 와서는 확실히 페미니스트라고 제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외박>을 보니 되게 감회가 새롭고 안 보이는 것들이 많이 보여요. <평행선>에서도 식당 아주머니라고 부르잖아요. 노조 간부들이 끊임없이 조합원이라고 하지 않고 아주머니라고 부르더라고요. 근데 <외박>에서는 아주머니라고 하니까 조합원이라고 불러달라고 항의를 하시잖아요.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나 싶기도 하네요.

김소희

아주머니라는 호칭이, <평행선>과 <외박>에 나오는데, <외박>에서는 다른 지점이 또 있었던 것 같아요.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를 노동자로 이야기하지 않고 아줌마라고 이야기할 때와 스스로 아줌마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그 의미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외박>에서는 아줌마라는 지칭어에 대해 항의하는 장면과 아줌마라는 지칭어를 스스로 쓰는 장면이 맞붙어 있어요. 그렇게 편집을 하신 이유가 있는지요.

김미례

그게, ‘외박’이니까요. 기존에 아줌마라고 하는 영역 안에서 불만스러워도 살고 있지만, 항상 자기 이름을 갖고 싶고, 그러나 그 길이 멀고 그런 복합적인 상황들을 보여줬던 거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전략적으로 사용하죠. 대중적인 매체, 남성 노동자들 앞에서는 “어머니, 아내, 아줌마들이 이렇게 힘들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다든지 그런 면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고요. 일탈 안에 다시 기존의 확고한, 다시 아줌마라는, 이름 없는 사회로 편입되어 가겠지만 곧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되길 바라는 상황을 표현했던 것 같습니다.

이혜란

이름 하니까 생각났는데, <우리들은 정의파다> 가제가 원래 <2번 시다>였어요.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던 수많은 여성. ‘2번 라인의 시다 하는 공순이’로 불렸던 여성들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서 그 작업을 했고요. <우리들은 정의파다> 작업하면서 키워드가 호명이었거든요. 역사적으로 동일방직 여성 민주노조의 투쟁을 불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여성들이 스스로 자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호명하길 원했어요. 영화를 보면 “정남이가, 순애가~” 이런 식으로 서로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흐름이 있어요. 그리고 <평행선> 같은 경우에는,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 중에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조합원이라고 기억하거든요. 노조에서는 아줌마라고 불렀지만, 여성 노동자들 스스로는 식당 여성조합원으로 호명했던 것 같아요.

관객 5

이혜란 감독님께 질문드리고 싶은데, <평행선>을 17년 전에 완성하셨다고 했어요. 17년 전에 만든 작품을 지금 보셨을 때 아쉬운 점이나 시각이 변한 점 같은 차이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혜란

<평행선>이 네 번째 상영이라고 말씀드렸는데, 2000년도에 회사 측이 제시한 협상안을 받아들이면서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복직 투쟁을 접게 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저희가 현대자동차노동조합에 공격을 많이 받았어요. 영화에도 잠깐 나오지만, 촬영도 저지당했었고. 우리 카메라가 노노 갈등을 조장하고 있고 편파적이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었고. 완성될 때쯤에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협박들이 있었어요. 제작진들에게 들어왔던 협박보다 식당 여성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협박이 가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2년의 복직 투쟁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그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 안에 많은 압박과 고립되었다는 생각이 있었겠죠. 노동조합도 그렇고 현장 활동가도, 남성 조합원들도 그들에게 없었죠. 그때 당시에 식당 노동자분들이 <평행선> 상영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저희에게 부탁한 것도 있어요. ‘현대자동차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한 번 붙어보지 뭐, 노이즈 마케팅해야지’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당사자분들이 저희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을 때는 너무너무 힘들긴 했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거든요. 그분들이 자기 생존 앞에서 부탁하셨기 때문에, 세 번 상영하고 못 했어요. 이번에 다시 보면서 저는 되게 잘 울거든요. 제 영화를 보면서 항상 울어요. <평행선>을 보면서도 되게 많이 울었어요. 90년도에 편집을 했던 거라 효과 같은 게 되게 웃겨요. 쓱 들어갔다가 훅 나오고, 지금 보면 부끄러워요. 그때는 왜 그랬을까 생각하는데, 너무 슬퍼요. 그분들이 민주노조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때도. 민주노조가 버리고 있는 어떤 민주성, 역사성.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 처절하게 그것들을 지켜내고 있는 걸 보며 마음이 아팠어요. 여전히 그걸 보면 혼자 눈물 흘리고.

관객 6

<우리들은 정의파다>와 <평행선>을 보면서, 그 당시에 만들었던 노동 다큐멘터리들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니까 시대를 앞서는 세련된 음악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는 소감이 있었고요. <평행선>이라는 이름이,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당대의 사태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후에, 노조, 넓게는 노동운동 안에서 어떤 외적인 질곡을 예언하고 있고 그 연장선에 <외박>에서 다루고 있는 사태도 있는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평행선>이 17년 동안 네 번 상영했다고 하는데, 민주노총의 집행부들이 다시 이 시점에서 두 영화를 보면서 자기 점검을 하는 자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조 운동이 점점 더 나아가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 같아요. 질문드리고 싶은 건, <우리들은 정의파다>에서 오랜 세월 동안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복직하겠다는 게 일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복직해서 정당하게 사직서를 쓰고 정리를 하고 싶다는 거고, 자신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후배 노동자들에게 선례가 될 테니까. 그런 방식으로 해고가 되었는데, 다시 복직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절망감 같은 게 있으니까 상징적인 시도라고 영화를 보면서 느꼈는데요. 거꾸로 저는 동일방직에서 상징적인 의미라는 걸 알면서 지금 시점까지 왜 복직을 허용하지 않는 건지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그리고 <외박>에도 질문드리고 싶은데, <우리들은 정의파다>에서 보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싸움을 했지만 어떻게 보면 여성 노동자들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계기, 여성으로서 잃어버렸던 이름이나 말들을 찾는 계기였다는 것을 거의 40년 지나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외박> 같은 경우도, 거의 10년 가까이 지난 거잖아요. 영화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외박이라고 하는 잠정적인 이름으로 마무리하셨는데, 10년 정도 지났으니까 이랜드 투쟁을 하셨던 분들의 모습은 지금은 어떤 형태일지 아시는 게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김미례

아직 현재 모습이죠. 제가 항상 느끼는 건데, 일부는 투쟁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 상당히 보수화된다는 거고요. 일부는 그런 경험이 자신의 삶을 바꾸는데, 큰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거예요.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무기계약직이기는 하지만,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대우를 받고 처음 5년간은 굉장히 당근을 많이 줬을 거 아니에요? 그것의 맛을 알고 거기 안에서 힘을 받기 시작하면서 보수화되는 사람들이 있었고요. 요번 해에 그 이전의 집행부가 노조 위원장이 회사의 대리 역할을 했다고, 내부에서 선거를 통해서 바꿨어요. 소위 노노 갈등이죠. “우리가 어떻게 했던 건데, 너희가 어떻게 말아 먹느냐?” 하면서 대항할 줄 아는 사람들이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이혜란

동일방직은 절대 해줄 리 없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도 차수련 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님이 복직하셨잖아요. 내가 복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길 수 있다는 거 보여주고 싶었다고 상징성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자본의 상징성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생각해요. 절대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 쪽에서도 안 될 거고, 국가에서도 안 될 거예요.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의 복직은 연쇄 반응이죠, 모든 기업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님 같은 경우에도 계속 복직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는데도, 경총 쪽에서 막았잖아요. 그들이 가진 자존심 싸움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생각해요. <평행선>의 음악에 대해서 질문을 처음 받아봤어요, 솔직히. 말씀하신 것처럼 90년대 노동 다큐멘터리 안에서 음악 사용은 100% 민중가요거든요. <평행선>을 보면, 장르로 따져보면 클래식도 나오고, 어쿠스틱 기타도 나오고, 피아노도 나오고. 팝도 나와요. 약간 록도 나와요. 그리고 민중가요도 나오죠. 음악 감독이 있기도 했지만, 실제 제가 사운드 디자인을 하면서 다양한 음악 장르가 가진 다양한 감정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휑한 투쟁 터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썼을 때도, 그 쓸쓸한 감정을 여성 노동자들의 감정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또 한 가지는 그때 당시 민중가요를 사용할 수 없었어요, 너무 남성 중심적이거든요. 철의 노동자. 형제. 기름밥 동지. 여성들의 이미지에 절대 맞지 않았거든요. <평행선>에서 썼던 민중가요가 딱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노래들 안에는 그런 언어들이 절대 나오지 않아요. 민중가요가 굉장히 메시지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음악이기 때문에, 이 메시지에 맞는 여성의 이미지는 없어요. 대부분 남성 노동자의 이미지고요. 두 곡 같은 경우는 제가 굉장히 심사숙고해서 사용했어요. 본관 앞에서 투쟁하면서 나왔던 ‘칼을 가시게’, 그리고 단식 들어가기 전에 ‘지금은 우리보다 더 강하게.’ 진짜 슬펐지만, 진짜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악을 쓰면서도 굉장히 마음이 아팠지만, 실제 힘을 주고 싶었어요.

김소희

굉장히 처절한 상황이 보이는데, 음악이 밝고 경쾌하게 흐를 때 아이러니하면서도 감정을 건드리는 게 있었고 중간에 무성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입원 장면에서도 또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었어요. 이혜란 감독님 작품뿐만 아니라 <외박>에서도 음악 사용이 두드러졌던 것 같아요. 탱고 사운드라고 하기도 하고, 가볍고 밝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음악 사용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인식하는데 한 기능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중간에 ‘바위처럼’이라는 투쟁가가 나올 때는 투쟁가도 무겁기만 한 것이 아니고 굉장히 밝을 수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김미례

저도 투쟁가요에 어색했었고, 음악이 참 어려웠어요. <외박>을 음악 하시는 분에게 처음 맡겼을 땐 여성들의 투쟁이 처절하고 슬프다는 것으로 이해하셨던 것 같고, 결국은 다른 분과 음악 작업을 해야 했고요. 같이 지내면서 제가 봤는데 투쟁하고, 지키고 있지만 절대 슬픈 게 아니라 굉장히 힘들고, 즐거웠던 게 음악으로 표현되면 좋겠다고 해서 탱고가 의도적으로 선택되었어요. 투쟁가요가 나오는 건 그들의 일상이었는데, 그들도 투쟁가요에 어색했어요. 노래 부르는 걸 굉장히 어색해했는데, 막판이 되니까 세계가 분리되는 걸 많이 이야기했어요. 집에서는 투쟁의 장소에서 굉장히 멀어진 걸 느끼지만, 다시 투쟁 장소로 가면 투쟁가요가 들리면서 조끼를 입으면 그 안에서의 세상과 투쟁 복을 벗고 나왔을 때 두 세계가 딱 분리가 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힘을 잃어가다가도 투쟁가를 부르면서 억눌렸던 분노 같은 게 발산되는 것 같다는 방식으로 저는 이해했어요.

김소희

오늘 상영된 세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여성이 자신의 온몸으로 싸운다는 것의 의미를 잘 느낄 수 있었어요. 두 분 모두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 노동자분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감독님들에게 어떻게 남아있는지 들으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미례

그 시간은 지나갔고요.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하고 생각했던 걸 되새기면서 다시 만나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이혜란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작업이 40년 동안 복직 투쟁을 하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왜 그들은 돌아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여정 안에서 고독과 꿈, 여성의 열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다음 작업 기대해주시고요. <평행선> 영상 이미지 중에 식당에 있는 이미지 기억나세요? 저는 그 영상을 슬로우로 잡으면서 오디오도 슬로우로 잡았거든요. 오디오가 굉장히 크게 들리셨을 것 같아요. 식당에서 일하는, 밥 짓는 노동 자체의 거대함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어떤 조선소 못지않은, 어떤 자동차 공장에 못지않은 스케일과 여성 노동자의 파워풀함. 물과 불과 칼이 항상 옆에 있는 산재의 위험이 굉장히 높은 공간이긴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육체적 이미지들을 오디오 안에서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김미례

<평행선> 작업 이후에 이야기를 들었는데, 촬영하면서 설거지를 엄청 많이 하셨답니다. 거기서 같이 촬영하고 설거지하고.

이혜란

제가 일을 잘하거든요(웃음).

김미례

그래서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김소희

갑자기 슬로우로 나오고 전체적으로 튀는 장면이잖아요. 열기가 고스란히 카메라로 전달된 것 같아요. 핀 마이크로 인터뷰를 하는 장면도 있어서 취재 상황이 궁금했는데 말씀을 해주셨네요. 이것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고요. 늦게까지 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녹취 및 정리 : 이지혜,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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